리처드 3세
2022년 02월 09일(수) 05:00
영국 왕 가운데 가장 사악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 인물은 리처드3세다. 재위 기간은 2년에 불과했지만 조카를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탓에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은 조선시대 수양대군(세조)에 자주 비교되곤 한다.

그가 살았던 15세기 중후반은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의 왕권 쟁탈전이 치열했던 장미전쟁 시기다. 요크가는 리처드3세의 큰형 에드워드4세 때 패권을 잡았다. 하지만 에드워드4세가 사망하면서 권력 공백이 생겼고 이 과정에서 리처드3세가 발 빠르게 왕권을 차지했다. 형이 사망하자 조카인 에드워드5세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섭정을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런던탑에 가두고 왕이 된 것이다.

그가 조카를 죽였는지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근거는 없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희곡 ‘리처드3세’를 통해 그를 음모와 권모술수로 왕위에 오른 폭군으로 그렸다. 총명한 식견을 지닌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못생긴 꼽추라는 이유로 항상 뒷전에 밀려나 있던 요크가의 셋째 아들. 결핍과 콤플렉스 속에서 성장하다 보니 뒤틀린 욕망은 점점 커지고 빼앗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는 인물로 묘사됐다.

셰익스피어 작품 속의 리처드3세는 비뚤어진 권력욕으로 두 형을 죽음으로 내몰고 조카까지 살해한다. 이처럼 리처드3세가 폭군으로 그려진 데는 그의 죽음으로 장미전쟁이 막을 내리고 대영제국의 기반이 되는 튜더왕조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튜더왕조 시대 사람이니 아마도 승자의 기준에서 리처드3세를 폭군으로 폄하했을 것이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극 ‘리차드3세’가 인기리에 상영 중이다. 리처드3세 역할을 맡은 황정민의 연기가 단연 압권이다. “난 뒤틀린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기를, 나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리.” 이 같은 황정민의 독백은 뒤틀린 욕망으로 가득 찬 리처드3세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러닝타임 100분 동안 거의 1인극이라 할 정도로 많은 대사를 황정민은 어떻게 다 외웠을까. 참으로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비록 왜곡되게 그려졌지만 고전의 힘과 함께 뮤지컬에 밀려 있는 정통 연극의 매력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장필수 제2사회부장 bun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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