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클릭, 문화현장]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전
2022년 02월 07일(월) 17:50 가가
아련한 향수…거친 나목에 담긴 한국적 미감
국립현대미술관, 3월1일까지 역대 최대
드라마틱한 삶과 작품세계 입체적 조명
유화·수채화·드로잉·삽화 등 174점
박수근 그림공부 자료 100여 점도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3월1일까지 역대 최대
드라마틱한 삶과 작품세계 입체적 조명
유화·수채화·드로잉·삽화 등 174점
박수근 그림공부 자료 100여 점도 전시


‘박수근:봄을 기다리는 나목’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 이후 처음으로 기획한 박수근 화백의 개인전이다. 강원도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과 공동으로 주최한 전시는 오는 3월1일까지 열린다.
코로나19와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예술을 향한 시민들의 열망은 오히려 뜨겁기만 하다. 최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수근:봄을 기다리는 나목’(3월1일까지 전시)에는 4만 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등 성황을 이루고 있다. 설날 연휴를 맞아 전국 각지에서 온 관람객들은 앙상한 겨울나무에서 새로운 싹이 트는 희망을 기대하며 위로를 받았다.
박수근 화백의 개인전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처음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회는 이건희 컬렉션과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의 컬렉션을 한자리에 모은 것으로, 유화, 수채화, 드로잉, 삽화 등 174점과 화집, 스크랩북, 스케치, 엽서 등 자료 100여 점이 선보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1950~60년대로 되돌아 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전쟁의 상흔과 가난한 시절의 풍경이 한편의 다큐멘터리 처럼 펼쳐져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전시제목의 ‘나목’(裸木)은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참혹한 시대, 그 시기에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야 했던 사람들, 그리고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고 마침내 찬란한 예술을 꽃피운 박수근을 상징한다.
전시는 박수근의 시대를 읽는 키워드로 ‘독학’, ‘전후(戰後) 화단’, ‘서민’, ‘한국미’ 등 4개로 제안했다. 네 개의 전시실은 각각 박수근의 부인 김복순 여사, 소설가 박완서, 아들 박성남, 그리고 일찌감치 박수근의 진가를 알아본 컬렉터와 비평가들의 시선을 따라 구성됐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건 1부 ‘밀레를 사랑하는 소년’이다. 타이틀 그대로 ‘밀레와 같이 훌륭한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 박수근이 화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때 쌓은 자양분이 곧 박수근 예술의 원천이 됐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전시에는 10대 시절에 그린 수채화에서 부터 1950년대 유화까지 그의 초기작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소년이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참고했던 외국의 화집, 미술잡지, 그림엽서 등의 자료들을 보면 얼마나 화가가 되고자 싶어했는 가를 이해하게 된다. 인상주의 화풍을 시도한 ‘철쭉’(1933)과 ‘겨울 풍경’(1934)과 1964~1965년 한국전력공사 사보에 실린 삽화 등이 전시돼 있다. 생계를 위해 기고한 삽화들이지만 간결한 구도와 밀도있는 짜임새, 다양한 질감표현이 박수근의 개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들 자료 가운데 눈에 띄는 건 박수근의 부인 김복순 여사가 기록한 ‘박수근 화백의 일생기’(1977~1978,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소장)다. 1975년 박수근 10주기를 기념해 집필된 이 전기에는 박수근의 어린 시절, 전쟁체험, 화단활동, 병마와 타계까지 길지 않은 생애가 촘촘하게 담겨 있다.
2부 ‘미군과 전람회’에서는 한국전쟁 후 재개된 제2회 국전에서의 특선 수상작 부터 그가 참여한 주요 전람회 출품작들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군 PX 초상화가 시절과 용산미군부대 도서실에서 개최됐던 ‘박수근 개인전’(1962년)이 ‘전시 속 전시’로 선보인다.
박완서의 소설 ‘나목’을 매개로 국민화가가 견뎌낸 인고의 시대와 그의 대표작인 ‘나무와 두 여인’(130x89cm, 캔버스에 유채,1962년 작)은 박완서의 소설 ‘나목’에도 등장하는 작품으로 고목이 서 있는 무대를 배경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을 표현했다.
3부 ‘창신동 사람들’은 박수근이 정착한 서울 창신동을 중심으로 가족, 이웃, 시장 상인 등 그가 날마다 마주쳤던 소소한 삶의 단상들이 펼쳐진다. ‘판잣집’, ‘세 여인’(21x46.4cm, 나무판에 유채, 1960년대 전반). ‘아기업은 소녀’(34x17cm, 캔버스에 유채, 1960년대 전반) 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들이다. 특히 당시 시대상을 카메라앵글에 담은 한영수 작가의 사진들은 역사장 가장 가난했던 시절인 전후의 일상이 한국적인 정취가 묻어나는 캔버스와 모던한 사진가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리얼리즘의 장르로 승화됐다.
당시 판잣집이 늘어선 창신동 골목길은 좁고 누추하지만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웃들은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이 시기에 그린 ‘판잣집’(20x26.6cm, 종이에 유채, 1950년대 후반)은 가난의 상징이지만 화가는 따스한 색채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기를 표현했다.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목’은 이번 회고전의 의미를 함축하는 자리다. 박수근이 완성한 아름다움의 정수가 무엇인지 관람객들이 스스로 찾아 보게 하는 전시로, 추운 시대를 맨몸으로 견뎌온 ‘나목’, ‘노변의 행상’(31.5x41cm, 캔버스에 유채, 1956~1957년 경), ‘고목과 여인’(45x38cm, 캔버스에 유채, 1960년대 전반)이 사실은 한국인의 자화상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 가운데 ‘노변의 행상’은 실리아 짐머맨이라는 미국인이 소장한 작품으로, 무역회사 직원인 남편과 함께 1954년부터 2년 반 가량 한국에 체류하며 미술가들과 친분을 쌓는 등 반도화랑 설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한국미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한국현대화가’(Korean Artist·1957)를 펴냈고 샌프란시스코 미술관에서 개최된 ‘동서미술전’(1957년)에 자신이 소장한 한국미술품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이 자리에는 박수근의 그림이 인기리에 매매됐던 반도화랑과 그의 그림을 수집한 외국인들의 면면을 통해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박수근의 예술적 공감을 살펴 볼 수 있다.
윤범모 관장은 “이번 회고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첫번째 박수근 개인전이자 역대 박수근 전시 중 가장 규모가 크다”면서 “작가의 초기부터 만년까지 시대·소재·기법별로 다양한 작품을 총망라한 만큼 일생에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1950~60년대로 되돌아 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전쟁의 상흔과 가난한 시절의 풍경이 한편의 다큐멘터리 처럼 펼쳐져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전시제목의 ‘나목’(裸木)은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참혹한 시대, 그 시기에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야 했던 사람들, 그리고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고 마침내 찬란한 예술을 꽃피운 박수근을 상징한다.
![]() ![]() |
‘나무(나무와 두 여인)’ |
이들 자료 가운데 눈에 띄는 건 박수근의 부인 김복순 여사가 기록한 ‘박수근 화백의 일생기’(1977~1978,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소장)다. 1975년 박수근 10주기를 기념해 집필된 이 전기에는 박수근의 어린 시절, 전쟁체험, 화단활동, 병마와 타계까지 길지 않은 생애가 촘촘하게 담겨 있다.
2부 ‘미군과 전람회’에서는 한국전쟁 후 재개된 제2회 국전에서의 특선 수상작 부터 그가 참여한 주요 전람회 출품작들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군 PX 초상화가 시절과 용산미군부대 도서실에서 개최됐던 ‘박수근 개인전’(1962년)이 ‘전시 속 전시’로 선보인다.
박완서의 소설 ‘나목’을 매개로 국민화가가 견뎌낸 인고의 시대와 그의 대표작인 ‘나무와 두 여인’(130x89cm, 캔버스에 유채,1962년 작)은 박완서의 소설 ‘나목’에도 등장하는 작품으로 고목이 서 있는 무대를 배경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을 표현했다.
![]() ![]() |
서울 창신동에서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1950~60년대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
당시 판잣집이 늘어선 창신동 골목길은 좁고 누추하지만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웃들은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이 시기에 그린 ‘판잣집’(20x26.6cm, 종이에 유채, 1950년대 후반)은 가난의 상징이지만 화가는 따스한 색채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기를 표현했다.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목’은 이번 회고전의 의미를 함축하는 자리다. 박수근이 완성한 아름다움의 정수가 무엇인지 관람객들이 스스로 찾아 보게 하는 전시로, 추운 시대를 맨몸으로 견뎌온 ‘나목’, ‘노변의 행상’(31.5x41cm, 캔버스에 유채, 1956~1957년 경), ‘고목과 여인’(45x38cm, 캔버스에 유채, 1960년대 전반)이 사실은 한국인의 자화상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 가운데 ‘노변의 행상’은 실리아 짐머맨이라는 미국인이 소장한 작품으로, 무역회사 직원인 남편과 함께 1954년부터 2년 반 가량 한국에 체류하며 미술가들과 친분을 쌓는 등 반도화랑 설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한국미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한국현대화가’(Korean Artist·1957)를 펴냈고 샌프란시스코 미술관에서 개최된 ‘동서미술전’(1957년)에 자신이 소장한 한국미술품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이 자리에는 박수근의 그림이 인기리에 매매됐던 반도화랑과 그의 그림을 수집한 외국인들의 면면을 통해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박수근의 예술적 공감을 살펴 볼 수 있다.
윤범모 관장은 “이번 회고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첫번째 박수근 개인전이자 역대 박수근 전시 중 가장 규모가 크다”면서 “작가의 초기부터 만년까지 시대·소재·기법별로 다양한 작품을 총망라한 만큼 일생에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