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공동체 꿈꾸는 ‘달빛동맹’
2021년 12월 15일(수) 00:30 가가
수도권 집중에 맞선 ‘초광역 협력’
내륙철도·아시안게임 전폭 지원을
내륙철도·아시안게임 전폭 지원을
광주와 대구는 동서로 200㎞나 떨어져 있지만 닮은 점이 많은 도시다. 지리적으로는 각각 호남과 영남을 대표하는 내륙 거점이다. 대도시로는 드물게 도심 가까이에 높이 1000m가 넘는 산이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무등산(1187m)과 팔공산(1192m), 그 웅혼한 정기 덕분일까. 나라가 위기에 처하거나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면 양쪽 사람들은 너나없이 앞장서 항거했다. 두 도시 모두 의향(義鄕)의 전통이 있는 것이다. 국채보상운동과 학생독립운동은 각각 대구와 광주로부터 시작됐다. 민주화의 초석이 된 2·28민주운동과 5·18민주화운동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내륙 도시의 한계로 인해 물류 기반과 산업 구조가 취약한 점도 닮은꼴이다. 대구는 1990년대 초반까지 압축성장 과정에서 경부축의 핵심이었지만 섬유 등 중심 산업이 쇠퇴하면서 침체를 겪었다. 광주는 정부의 수도권 및 영남 중심 성장 전략에 밀려 애초부터 산업 발전에서 소외됐다. 그 후유증인지 양 도시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나란히 전국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수도권 집중에 맞선 ‘초광역 협력’
정치적으로 보면 역대 정권과 유력 정치인들이 지역주의를 부추기면서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진보·보수의 심장으로 각각 꼽히는 양 지역 유권자들은 선거철이면 각자의 진영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정치적 편향성이 그만큼 심화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와 함께 영호남 갈등 구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30여 년 전, 먼저 민간이 나서 상생의 오작교를 놓았다. 1991년 양 지역 교수·기업인·법조인·의사·예술계·언론인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영호남 민간인협의회’가 그것이다. 협의회는 동서 간극을 메우기 위해 청소년·문화·학술 교류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영호남 연결 교통망에 대한 집중 투자와 통합 행정구역 구성 등을 정부에 제안하기도 했다.
이 같은 민간 교류는 지자체들의 협력으로 이어졌다. 1998년 영호남 8개 광역자치단체가 참여하는 ‘시도지사 협력회의’가 출범했다. 이어 이들 지자체와 정부가 함께 자본금을 출연해 ‘동서교류협력재단’을 만들었다. 재단은 그동안 상대 지역 바로 알기 등의 사업을 펼쳐 왔다.
지자체 간 협력으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광주시와 대구시의 ‘달빛동맹’이다. 2009년 체결한 의료산업 공동 발전 협약이 그 단초가 되었다. 당시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를 놓고 지역 간 갈등이 심해졌다. 이에 두 도시가 소모적 경쟁을 자제하고 어느 곳이 선정돼도 연구시설과 생산 장비를 공동 활용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대구의 옛 지명인 ‘달구벌’과 광주의 순우리말인 ‘빛고을’의 머리글자를 딴 ‘달빛동맹’이란 말도 이때 처음 쓰였다.
이후 상호 방문 등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자 2013년에는 ‘달빛동맹 강화를 위한 교류협약’을 공식 체결했다. 이를 토대로 두 도시의 시장은 5·18민주화운동과 2·28민주운동 기념식에 교차 참석했고, 시민의 날에도 서로 사절단을 보내며 심리적 거리를 좁혔다. 2년 뒤에는 ‘달빛동맹 민관협의회’ 구성 조례를 제정하고 각계 전문가들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이들은 매년 양 지역을 오가며 공동 협력 과제를 발굴·추진하고 있다.
광주대구고속도로의 확장 개통은 인적·물적 교류 확대의 기폭제가 됐다. 사망사고율이 높아 ‘죽음의 도로’라고 불리던 88올림픽고속도로(왕복 2차로)가 4차로 확장 및 직선화 공사를 거쳐 2015년 완공된 것이다. 영호남이 힘을 합쳐 조기 개통을 이뤄 낸 덕분에 교통량이 30% 이상 늘어나고 운행 시간은 단축돼 물류비용이 크게 줄었다.
두 도시는 특히 상대가 어려움에 처할 때면 가장 먼저 손을 내밀며 끈끈한 형제애를 과시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태 전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의 ‘5·18 망언’에 대해 광주 시민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보냈다. 이용섭 광주시장도 그해 대구에 518번 시내버스가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광주에 228번을 신설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양 지역을 대표하는 민주화운동을 서로 기리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달빛의료지원단’을 파견하고 부족한 병상을 나눈 ‘병상연대’는 감염병 극복의 수범 사례로 꼽힌다.
고무적인 것은 양 지역 시장이 몇 번씩 바뀌어도 정책 공조가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협력 분야 역시 경제·산업, 사회간접자본(SOC), 문화체육관광, 환경생태 등 전방위적으로 확장되었다. 특히 양 지역 벤처·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달빛펀드’ 운영은 물론 인공지능(AI), 친환경 자동차, 첨단 의료, 신재생에너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동반성장을 꾀하고 있다.
내륙철도·아시안게임 전폭 지원을
지난 6월에는 두 도시를 한 시간대로 이어 물리적 거리를 한층 좁혀 줄 ‘달빛내륙철도’가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에 반영됐다.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20년간 번번이 탈락했던 광주 송정~서대구 간 198.8㎞의 철길 개설이 국가사업으로 확정된 것이다. 이 역시 촘촘한 공조 덕분이었다. 하지만 예비타당성조사와 4조 5000억 원 규모의 예산 확보 등이 과제로 남아 있다. 하계유니버시아드와 세계육상·수영선수권대회 등 국제 대회 개최의 풍부한 경험과 인프라를 갖춘 두 도시는 2038년 아시안게임 공동 유치에도 힘을 모으고 있다.
달빛동맹은 정치권이 만든 지역감정으로 영호남이 대립하는 사이에 수도권만 비대해지면서 소멸 위기에 처한 양 도시가 지역을 지키기 위한 대안으로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중앙집권에 맞서는 지방분권 운동이자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두 도시는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남부 내륙 광역경제권 구축을 꿈꾸고 있다. 국토의 남북축에 편중된 교통인프라와 산업기반을 동서로 확대해 국가 신성장축이자 경제공동체로 승화시키는 게 목표다.
정부는 최근 수도권 일극 체제 타파를 위한 국가 균형발전의 새로운 전략으로 광역지자체들의 ‘초광역 협력’을 제시했다. 달빛동맹은 이를 선구적으로 실천해 온 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정부가 전폭 지원에 나서야 한다. 그 첫걸음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통한 달빛내륙철도의 조기 착공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 함께 영호남 갈등 구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30여 년 전, 먼저 민간이 나서 상생의 오작교를 놓았다. 1991년 양 지역 교수·기업인·법조인·의사·예술계·언론인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영호남 민간인협의회’가 그것이다. 협의회는 동서 간극을 메우기 위해 청소년·문화·학술 교류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영호남 연결 교통망에 대한 집중 투자와 통합 행정구역 구성 등을 정부에 제안하기도 했다.
이 같은 민간 교류는 지자체들의 협력으로 이어졌다. 1998년 영호남 8개 광역자치단체가 참여하는 ‘시도지사 협력회의’가 출범했다. 이어 이들 지자체와 정부가 함께 자본금을 출연해 ‘동서교류협력재단’을 만들었다. 재단은 그동안 상대 지역 바로 알기 등의 사업을 펼쳐 왔다.
지자체 간 협력으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광주시와 대구시의 ‘달빛동맹’이다. 2009년 체결한 의료산업 공동 발전 협약이 그 단초가 되었다. 당시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를 놓고 지역 간 갈등이 심해졌다. 이에 두 도시가 소모적 경쟁을 자제하고 어느 곳이 선정돼도 연구시설과 생산 장비를 공동 활용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대구의 옛 지명인 ‘달구벌’과 광주의 순우리말인 ‘빛고을’의 머리글자를 딴 ‘달빛동맹’이란 말도 이때 처음 쓰였다.
이후 상호 방문 등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자 2013년에는 ‘달빛동맹 강화를 위한 교류협약’을 공식 체결했다. 이를 토대로 두 도시의 시장은 5·18민주화운동과 2·28민주운동 기념식에 교차 참석했고, 시민의 날에도 서로 사절단을 보내며 심리적 거리를 좁혔다. 2년 뒤에는 ‘달빛동맹 민관협의회’ 구성 조례를 제정하고 각계 전문가들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이들은 매년 양 지역을 오가며 공동 협력 과제를 발굴·추진하고 있다.
광주대구고속도로의 확장 개통은 인적·물적 교류 확대의 기폭제가 됐다. 사망사고율이 높아 ‘죽음의 도로’라고 불리던 88올림픽고속도로(왕복 2차로)가 4차로 확장 및 직선화 공사를 거쳐 2015년 완공된 것이다. 영호남이 힘을 합쳐 조기 개통을 이뤄 낸 덕분에 교통량이 30% 이상 늘어나고 운행 시간은 단축돼 물류비용이 크게 줄었다.
두 도시는 특히 상대가 어려움에 처할 때면 가장 먼저 손을 내밀며 끈끈한 형제애를 과시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태 전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의 ‘5·18 망언’에 대해 광주 시민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보냈다. 이용섭 광주시장도 그해 대구에 518번 시내버스가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광주에 228번을 신설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양 지역을 대표하는 민주화운동을 서로 기리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달빛의료지원단’을 파견하고 부족한 병상을 나눈 ‘병상연대’는 감염병 극복의 수범 사례로 꼽힌다.
고무적인 것은 양 지역 시장이 몇 번씩 바뀌어도 정책 공조가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협력 분야 역시 경제·산업, 사회간접자본(SOC), 문화체육관광, 환경생태 등 전방위적으로 확장되었다. 특히 양 지역 벤처·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달빛펀드’ 운영은 물론 인공지능(AI), 친환경 자동차, 첨단 의료, 신재생에너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동반성장을 꾀하고 있다.
내륙철도·아시안게임 전폭 지원을
지난 6월에는 두 도시를 한 시간대로 이어 물리적 거리를 한층 좁혀 줄 ‘달빛내륙철도’가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에 반영됐다.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20년간 번번이 탈락했던 광주 송정~서대구 간 198.8㎞의 철길 개설이 국가사업으로 확정된 것이다. 이 역시 촘촘한 공조 덕분이었다. 하지만 예비타당성조사와 4조 5000억 원 규모의 예산 확보 등이 과제로 남아 있다. 하계유니버시아드와 세계육상·수영선수권대회 등 국제 대회 개최의 풍부한 경험과 인프라를 갖춘 두 도시는 2038년 아시안게임 공동 유치에도 힘을 모으고 있다.
달빛동맹은 정치권이 만든 지역감정으로 영호남이 대립하는 사이에 수도권만 비대해지면서 소멸 위기에 처한 양 도시가 지역을 지키기 위한 대안으로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중앙집권에 맞서는 지방분권 운동이자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두 도시는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남부 내륙 광역경제권 구축을 꿈꾸고 있다. 국토의 남북축에 편중된 교통인프라와 산업기반을 동서로 확대해 국가 신성장축이자 경제공동체로 승화시키는 게 목표다.
정부는 최근 수도권 일극 체제 타파를 위한 국가 균형발전의 새로운 전략으로 광역지자체들의 ‘초광역 협력’을 제시했다. 달빛동맹은 이를 선구적으로 실천해 온 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정부가 전폭 지원에 나서야 한다. 그 첫걸음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통한 달빛내륙철도의 조기 착공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