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치
2021년 12월 05일(일) 23:30
브로치는 대표적인 의복용 액세서리 가운데 하나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천을 몸에 두를 때 이를 고정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브로치는 세공이 발달한 비잔틴 시대부터 제작됐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당초에는 귀금속 위주로 만들어졌지만 점차 나무나 가죽 등 브로치의 재료도 다양해졌다. 개성을 중시하는 현대에는 패션의 완성이라는 차원에서 브로치를 착용한다.

브로치는 장식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인 올브라이트는 브로치를 시의적절하게 활용한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재임 시절 사담 후세인이 자신을 ‘뱀’이라고 호칭하자, 뱀 모양의 브로치를 달고 방송에 출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김대중 정부 시절 방한 당시에는 햇살 형상의 브로치를 달아 ‘햇볕정책’ 지지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다.

얼마 전 김병준 국민의힘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의 ‘브로치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 영입 1호인 조동연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를 향해 ‘예쁜 브로치’라는 표현으로 논란을 일으킨 것. 김 위원장은 여당과 여성계의 비판이 일자 ‘브로치는 여성만 달지 않는다’는 황당한 변명을 하기도 했다.

결국 조 교수는 3일 만에 사생활 논란의 벽을 넘지 못하고 공동상임선대위원장 직을 사퇴했다. 물론 검증에 실패한 여당의 책임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특정 분야 전문가를 ‘액세서리’로 규정한 김 위원장 발언은 성인지 감수성과는 사뭇 동떨어진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브로치는 정치적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적 상징도 함의한다.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나비 브로치’,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희망 나비 브로치’, 제주 4·3 항쟁 희생자를 상징하는 ‘동백꽃 배지’ 등이 그러한 예다.

코로나19의 새로운 변이인 오미크론 감염 확산으로 또 다시 거리 두기가 강화됐다. 초겨울임에도 한겨울 한파가 닥친 듯 모든 게 위축됐다. 그 어느 때보다 정치인 메시지가 중요한 시기다. ‘예쁜 브로치’ 같은 폄훼와 궤변은 그 자신이 ‘정치판 브로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는 것 아닐까.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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