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붉게 물들이는 고추의 비밀-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2021년 11월 05일(금) 01:00
이 세상에는 맛난 것도 많다. 그 많은 음식들 중 먹어 본 것보다 그렇지 못한 것이 훨씬 많으리라 여겨진다. 하지만 내가 맛본 음식들 중 단연 으뜸은 잘 절여진 배추에 금방 양념을 버무린 김장 김치이다. 그 속살을 뚝 떼어서 ‘아!’ 소리와 함께 입에 넣어 주시던 어머니의 손맛 김장 김치는 감동 그 자체이다. 이제 어머니는 연세가 드셔서 그렇게 해 주시지 못하지만 매년 교회에서 김장을 하시는 분들에게 다가가 입을 벌리며 받아먹는 나의 모습은 비록 목사지만 천진난만하던 어린 시절 그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얼마 전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 댁에 들러 텃밭에서 제법 풍성하게 자란 배추 몇 포기를 가져왔다. 큼지막한 부엌칼을 들고 밭에 나가 뿌리 쪽을 향해 쑥하고 베어 내었다. 순간 재미있는 배추의 사연이 생각나서 미소를 짓게 되었다. 이 배추가 얼마나 독하고 질긴지 이렇게 뿌리를 베어 내고 배를 가르고 짜디짠 소금을 뿌려 숨을 죽인다. 그래도 숨이 붙어 있어 매운 고춧가루를 섞은 갖은 양념을 발라 긴 시간을 가둬 놓고 땅에 묻어 놔야 비로소 배추는 죽고 김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김치를 장독에 넣어 땅에 묻어 두는 시대는 아니다. 집집마다 김치냉장고가 있어 얼마나 편하고 좋아졌는지 모른다.

가을걷이를 하고 나면 씨를 뿌려 여름내 더위와 싸우며 흘렸던 땀방울이 아깝지 않고, 김장을 끝내고 나면 곧 다가올 추운 겨울이 두렵지 않은 것 같다. 과거 조선시대는 먹을 것이 풍부했던 때는 아니었다. 특히나 긴 기근이 있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었고 인구가 줄어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힘든 시기를 견딘 백성들이 안타까워 임금은 쌀의 생산을 늘릴 방안을 만들라 하였고 학자들은 이양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쌀의 수확이 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쌀의 소비도 많아지게 되었다. 고된 일을 해야 하는 백성들은 많은 양의 밥을 먹어야 했고 찬들이 필요했다. 그 찬거리 중에 김치가 빠질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김치가 오늘날 우리가 먹는 김치와는 완전히 다른 짠물에 절인 정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토종 배추는 지금의 배추와 다른 모양으로 포기가 풍성해지지 않는 얼갈이 배추와 흡사한 것이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풍성한 배추의 모양은 중국으로부터 전해졌다. 하지만 우장춘 박사에 의해 우리 토양에 맞게 품종 개량해서 현재의 배추가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우리가 잘 먹고 있는 배추이다. 밥을 많이 먹으려니 찬이 필요했지만 그것들을 많이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짜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소금이 귀하니 그것 또한 여의치 못했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부터 고추가 들어오게 된다. 김치에 고추가 쓰였다는 기록은 1766년 ‘증보산림경제’라는 책에 처음 등장한다.

긴 역사 속에서 조상들의 찬거리로 쓰였지만, 김치가 현재 우리가 먹는 모습을 갖춘 건 불과 10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소금에 절인 장아찌 형태로 긴 시간 먹었던 것이다. 김지나 김장이라는 이름은 그런 연유로 불리게 되지 않았나 싶다. 고추는 초기에 먹지 못할 독초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소금을 대체할 양념으로 쓰이게 되었고 실로 그 역할은 대단하다 할 수 있겠다. 매운 맛도 맛이지만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이 붉은 색이 바로 그 고추의 역할이다. 거기에 저장성을 높이는데도 보탬이 된다. 또한 김치는 유산균까지 생성한다 하니 세계인이 ‘김치 없인 못살아, 정말 못 살아!’라고 노래를 부를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 개신교가 전파된 것은 고추를 사용한 김치의 역사와 비슷한 시기이다. 고춧가루가 들어가 알싸한 매운 맛을 내며 먹음직스럽게 붉은 빛을 띄게 하고 부패를 방지하는 데도 일조를 한다. 그렇게 맛이 든 김치는 유산균까지 생성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붉은 보혈은 우리나라 역사와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많은 이들에게 참다운 삶의 맛을 느끼게 하고 부정과 부패를 막아 내며 유익을 주는 종교가 되기를 바란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빳빳한 배추가 자기를 죽이고 맛난 김치로 변해 가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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