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약의 진화(進化) - 김원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2021년 08월 27일(금) 07:00
서재필 선생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조국을 위해 힘썼던 월남 이상재(1850~1927) 선생이 일제의 조선 지도자 산업 시찰 계획에 따라 일본의 여러 군수공장과 산업시설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날 저녁 행사를 주관하는 측에서 연회를 베풀고 산업 시찰의 소감을 물었다. 이상재 선생의 차례가 되자 선생은 일본의 군수산업의 발전상과 그 규모의 대단함에 놀라웠음을 솔직히 말하면서 그러나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성경 말씀에 ‘칼로써 일어선 자는 칼로써 망한다’ 했는데 일본의 장래가 걱정이 된다, 하고 말했다.

이상재 선생의 경고는 얼마 가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구소련과 미국의 최신 무기 기술은 베트남 전쟁과 걸프전에서 유감없이 그 실력을 발휘하더니 아프간 전쟁에서도 위용을 자랑했다. 그리고 지금은 돌연 미군을 철수시키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에 놀라움을 가지면서도 자꾸만 이상재 선생이 인용했던 성경 말씀이 생각난다. 미국이 망하게 될 것이라든가 망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강대국의 힘이 남용됨으로써 자칫 더 큰 재앙을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테러는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리고 그처럼 무고한 사람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그 동기가 어떻든 지탄받을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생각해 볼 때는 여러 가지 원인들을 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가 막강한 일본에 저항하는 길은 일본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인물이나 장소를 공격의 목표로 삼아 가격하는 일이었다. 절대적 힘에 저항하는 길은 이렇게 의외의 공격 방법을 택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평화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또는 테러를 위해 응징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러한 세계 지배 전략이 약소국의 원한을 사는 일이 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사람마다 소중하게 아는 것은 생명이다. 그래서 생명은 천하와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생명을 포기할 때는 그 일에 대한 그만한 가치와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물론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고 오해일 수도 있고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강한 신념을 갖기까지는 적개심과 분노가 쌓일 때로 쌓이는 것이다. 옛말에 ‘윗사람이 아랫사람 보기를 자식같이 하면 아랫사람이 윗사람 대하기를 부모같이 하고, 윗사람이 아랫사람 보기를 지푸라기 보듯 하면 아랫사람이 윗사람 보기를 원수같이 한다’고 하였다.

미국은 세계를 지배할 만한 최강대국임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미국이 인권과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하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극단적 저항을 하게 되는 원인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미국은 정말 좋은 나라, 고마운 나라가 되어야 한다. 환경 문제나 무기 개발에 있어서나 세계 경제 문제에 있어서나 인류 공영의 길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약소국을 억누르고 자국의 이익만을 도모하기 위해 친미정권을 세우고 종속시키는 지배 전략을 계속 확대해 간다면 이는 세계의 불행일 뿐 아니라 인류의 불행이 될 것이다. 또한 약소국의 입장에서도 무조건적 저항만으로는 강대국을 길들 일 수 없으며 반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보복은 보복을 부르는 악순환일 따름임을 알아야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무저항 비폭력 운동으로 대영제국의 무력을 이겨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겨낸 역사적 사실이다.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이나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의 정신적 힘이 세계를 움직이는 더 큰 힘임을 알아야 한다. 원불교 대종사님은 “세상은 강자가 강을 베풀 때 자기도 이롭고 상대도 이로운 자리이타 법을 써서 약자를 이끌어 주고 배우기에 힘써서 자력을 세워나가는 길이 강자와 약자가 다 같이 발전하는 길이고 평화를 만드는 길이며, 약자는 강자로 인하여 강을 얻는 고로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바탕하라”고 했다. 우리는 전쟁과 다툼, 그리고 이념 대립을 통해 역사적으로 많이 보고 배워 온 민족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우리 생활 속에서 혹시나 부정당한 강을 행사하지는 않는지 또는 약자로써 부정당한 약을 행하지 않는지 돌아봐야겠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