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의 우렁찬 함성 소리-최현열 광주온교회 담임목사
2021년 08월 13일(금) 05:30 가가
올해는 유독 매미 소리가 크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보니 여럿이 모이기도 힘들어졌고 왁자지껄하며 자유롭게 소리를 내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 맴맴거리는 소리는 더욱 크게만 들린다. 주변이 조용한 탓이기도 하고 내가 예민해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보통 70~80데시벨 정도이고 이런 소음은 매우 시끄러운 철로변 및 지하철 소음과 같은 정도이다. 청력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라 하니 나의 신경을 건드린 것이 내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네 마음과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를 내는 매미들이 한편으로는 밉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저들의 생을 살펴보면 알이 부화하는데 일 년, 땅 속에서 나무 수액을 먹으며 지내는 애벌레 기간은 오 년에서 칠 년 정도이고 탈피를 해서 여름 한철 우는 기간이 한 달 정도인데 그럼 과연 매미들의 진짜 생은 무엇일까? 가장 긴 시간을 보낸 애벌레 기간일까, 성체가 되어서 지낸 한 달일까. 옛사람들은 매미를 청렴하고 덕이 많은 곤충으로 여겼다고 한다. 중국 진나라 시인 육운이라는 사람은 매미가 다섯 가지 덕을 갖췄다고 했다. 곧게 뻗은 긴 입이 선비의 갓끈 같다고 해서 문(文), 이슬과 수액만을 먹어 맑다고 해서 청(淸), 곡식·과일을 해치지 않아 염치가 있다 하여 염(廉), 제 살 집조차 없이 검소하다고 해 검(儉), 오고 갈 때를 안다고 해 신(信)이라고 했다고 하니 너무 과하게 표현한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땅속에서 견디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매미처럼 언젠가는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칠 날을 꿈꾸었던 이들에게는 좋은 귀감이 되었으리라.
또한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매미의 수명은 종에 따라 7년, 13년, 17년이라고 한다. 수학적으로 소수 해에만 해당된다고 하니 실로 미물의 생에서도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짝짓기 후 수컷은 죽고 암컷은 알을 낳은 후에 죽는다. 그렇게 울어대는 것은 수컷인데, 어느 정도 기온이 높아야만 소리를 낼 수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열을 받아야 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재미있는 사실이다. 기온이 낮거나 비가 와서 충분히 몸에 열을 받을 수 없으면 울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 긴 기간을 보낸 애벌레 때에 비해 성충이 되면 멋진 몸체도 갖추게 되어 자유로이 날 수도 있고 사랑을 찾아 노래 할 수도 있고 사랑을 나누며 알을 낳아 그 목적한 바를 달성하니 짧은 성충의 생애지만 축복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기독교인의 생에 있어 매미와 비슷한 면이 있는데 좀 다른 부분은 매미는 땅속에서 지내는 애벌레 시기에 비해 성체의 생이 짧지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이후가 영원이라 표현할 정도이니 비교할 수조차 없다.
신약성경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한다. 매미에게도 새로운 삶이 펼쳐지듯이 우리의 인생도 새로운 삶이 있다고 말씀한다. 땅속에서 지내던 애벌레의 삶이 불행해서가 아니라 날개를 펼치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더 나은 때가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애벌레의 시기가 반드시 있어야 성충의 화려한 삶도 있듯이 우리의 삶의 현실은 어둡고 냉혹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인고의 삶은 우리를 반드시 성장하게 하며 성숙하게 이끌 것이라 여긴다. 힘들지만 다같이 조금만 더 인내해 보자. 애벌레에서 성충이 되기 전 잠깐 멈춤의 시간인 번데기 때가 있듯이 우리의 잠깐 멈춤이 더 나은 미래가 되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열을 받아야 소리를 내는 매미처럼 우리도 분이 올라오고 짜증이 생겨 소리를 치고 싶겠지만, 매미가 사랑을 찾아 우렁찬 소리를 발하듯이 기독교인의 삶도 그렇다. 우리 삶 속에 아파하는 이들을 위한 노래를, 고통 속에 아우성치는 이들을 위로해 주는 노래를, 사랑을 나누기 위해 열정을 북돋우는 노래를 크게 불러 보자. 이것이 코로나로 지친 우리의 삶에 노래할 이유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긴 기간을 보낸 애벌레 때에 비해 성충이 되면 멋진 몸체도 갖추게 되어 자유로이 날 수도 있고 사랑을 찾아 노래 할 수도 있고 사랑을 나누며 알을 낳아 그 목적한 바를 달성하니 짧은 성충의 생애지만 축복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기독교인의 생에 있어 매미와 비슷한 면이 있는데 좀 다른 부분은 매미는 땅속에서 지내는 애벌레 시기에 비해 성체의 생이 짧지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이후가 영원이라 표현할 정도이니 비교할 수조차 없다.
신약성경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한다. 매미에게도 새로운 삶이 펼쳐지듯이 우리의 인생도 새로운 삶이 있다고 말씀한다. 땅속에서 지내던 애벌레의 삶이 불행해서가 아니라 날개를 펼치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더 나은 때가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애벌레의 시기가 반드시 있어야 성충의 화려한 삶도 있듯이 우리의 삶의 현실은 어둡고 냉혹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인고의 삶은 우리를 반드시 성장하게 하며 성숙하게 이끌 것이라 여긴다. 힘들지만 다같이 조금만 더 인내해 보자. 애벌레에서 성충이 되기 전 잠깐 멈춤의 시간인 번데기 때가 있듯이 우리의 잠깐 멈춤이 더 나은 미래가 되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열을 받아야 소리를 내는 매미처럼 우리도 분이 올라오고 짜증이 생겨 소리를 치고 싶겠지만, 매미가 사랑을 찾아 우렁찬 소리를 발하듯이 기독교인의 삶도 그렇다. 우리 삶 속에 아파하는 이들을 위한 노래를, 고통 속에 아우성치는 이들을 위로해 주는 노래를, 사랑을 나누기 위해 열정을 북돋우는 노래를 크게 불러 보자. 이것이 코로나로 지친 우리의 삶에 노래할 이유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