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2021년 06월 18일(금) 04:20 가가
나의 외증조부는 1899년 한국에 온 부해리(본명 Henry Munro Bruen, 1874~1959) 선교사에 의해 복음을 듣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 후 선교사를 도와 교회를 세우고 선교활동에 동역하였다. 외조부는 평양신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고 목회를 하였으며 작은 외조부는 여수 애양원과 ‘사랑의 원자탄’으로 유명하신 손양원 목사님과 동문수학하시다 졸업하셨다. 손 목사님은 아들을 죽인 공산분자가 처형되려는 순간 구명하여 양아들로 삼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후 손 목사님은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 공산군의 총탄을 맞고 순교하였다.
작은 외조부 소도열 목사는 평양신학교 34회 졸업생으로 손 목사와 함께 수학했다. 늘 공부하고,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도 혼신을 다했다. 신학생 시절 평양의 성서구락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후에 예장통합 경서노회의 창단 멤버로서 경서노회장과 성경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작은 외조부는 손 목사와 비슷하게 6·25 전쟁 당시 두 아들을 하나님께 보냈다. 당시 신학생이었던 큰 아들 소재명과 둘째 아들 재덕은 마을의 기독교인들을 숨겨주고 보살피는 일을 하다가 인민군에게 총살당했다. 공산당의 위협을 피해 교인들을 숨겨 주었다가 발각되어 작은 외조부의 두 아들도 순교한 것이다. 작은 외조부님은 아들들을 가슴에 묻고 죽인 이들을 용서하며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어머니의 사촌이신 두 분의 순교는 큰 충격이었고 남겨진 그분들의 성경책은 추억의 대상이 아니라 잔혹한 총탄의 흔적이며 원수를 상기하게 만드는 그날의 증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신앙의 힘으로 그 원수들을 용서하고 목회자의 사모로 평생을 사셨다. 찬송가 중에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중략) 어머니가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라는 가사가 있다. 나의 어머니는 일제시대 소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국어를 배워야 할 시기에 일본어를 익히고 써야만 했다. 그래서 한글을 읽고 쓰실 수는 있지만 뭔가 부족함이 늘 있으셨다. 어릴 적 어머니는 시간 나실 때마다 성경책을 읽으셨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중얼중얼 거리는 줄 착각할 정도로 소리를 내어 읽고 또 읽으셨다.
그렇게 읽어 내려가시다 레위기 19장의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라는 구절이나 누가복음 6장의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라는 대목을 읽으실 때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내 형제를 죽인 원수를 갚지 않는 것만 해도 이 얼마나 대단한 자비인가. 그런데 사랑까지 하라니 이 어찌 가능한 일이겠는가. 어머니와 외가 어르신들께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시는지 차마 물어 보지는 못하였다. 다만 신앙의 힘으로 이기셨으라 짐작을 한다.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진 분단된 국가가 되었듯이 이스라엘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단되어 이백 년 이상을 갈라져 지냈던 역사가 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앗수르라는 나라에 북이스라엘이 먼저 멸망당하게 되었고, 그 후 남유다의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함을 깨달아 북이스라엘 주님을 위로하고 한 민족임을 상기시키고자 유월절이라는 절기를 남유다와 북이스라일이 함께 지키기를 제안한다. 아픔을 겪은 북이스라엘 주민을 먼저 위로하고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지키며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돌아가 통일된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처음에는 북이스라엘 주민이 조롱하며 비웃었지만 몇몇 사람은 겸손한 마음으로 참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코로나로 인하여 북한은 더 폐쇄되었고 고립되어서 과연 어떠한 삶을 사는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때이다. 역사를 잊고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겠지만, 인도주의적 차원을 넘어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사랑의 손길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의 호의를 무시하며 흑색선전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말이다. 그중에서 혹시 겸손하게 다가오는 이가 있지 않겠는가 기대하며 말이다.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진 분단된 국가가 되었듯이 이스라엘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단되어 이백 년 이상을 갈라져 지냈던 역사가 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앗수르라는 나라에 북이스라엘이 먼저 멸망당하게 되었고, 그 후 남유다의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함을 깨달아 북이스라엘 주님을 위로하고 한 민족임을 상기시키고자 유월절이라는 절기를 남유다와 북이스라일이 함께 지키기를 제안한다. 아픔을 겪은 북이스라엘 주민을 먼저 위로하고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지키며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돌아가 통일된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처음에는 북이스라엘 주민이 조롱하며 비웃었지만 몇몇 사람은 겸손한 마음으로 참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코로나로 인하여 북한은 더 폐쇄되었고 고립되어서 과연 어떠한 삶을 사는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때이다. 역사를 잊고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겠지만, 인도주의적 차원을 넘어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사랑의 손길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의 호의를 무시하며 흑색선전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말이다. 그중에서 혹시 겸손하게 다가오는 이가 있지 않겠는가 기대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