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 주어라” - 황성호 신부
2021년 06월 11일(금) 05:30

[황성호 신부, 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무상 원조’라는 말을 부모님 세대로부터 들었다. 6·25 전쟁은 우리의 모든 것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산과 들은 물론 공공시설과 산업시설들이 모두 파괴되었다.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혹독한 시련의 시기였다. 이때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6·25 전쟁이 끝나고 굶주림으로 힘들었던 우리에게 가장 큰 규모로 도움을 주었던 유엔 기구였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 아니 되돌려 주는 나라로 탈바꿈하고 있다. 우리 농림축산식품부는 유엔 세계식량계획과 함께 대한민국의 쌀이 지구촌의 가난하고 굶주리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무상으로 받았으니 당연히 다시 무상으로 돌려주는 것이 옳다.

우리가 어려웠을 때 받았던 도움의 손길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굶주림을 그대로 보고만 있다면,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던 나라들의 좋은 마음을 헌신짝처럼 취급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필자가 10년 전 남미 칠레의 빈민가에 선교 사제로 가겠다고 청했을 때, 당시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이셨던 대주교님께서 “그래 우리도 이제 받는 교회에서 돌려주는 가톨릭교회가 되어야지!”라고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마태오 복음 10장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세상으로 파견하시는 내용이다. 길 잃은 양들을 찾아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를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살려 주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낫게 하고, 마귀를 쫓아내라고 명하신다. 그러면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무엇을 받았기에 무엇을 줄 수 있다는 말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회칙인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서 ‘다른 이들에게 열려 있는 무상성’이라는 주제로 마태오 복음 5장 45절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십니다”를 인용하신다. 우리의 생명이 소중하며 그 생명은 모두가 같은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말씀이다. 이어서 교황은 “우리는 생명을 거저 받았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얻으려고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습니다”라고 예수의 말씀을 더욱 강조하신다. 교황은 ‘무상성’을 강조하시는데, 개인적 이득이나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다만 그 자체로 좋은 것이기에 어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난민과 같은 이방인들을 환대하기를 권고하신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명을 얻으면서 어떤 것으로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는 무상성으로 태어났고, 성장하고 살면서도 무상성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 존재! 우리가 지닌 무상성은 무시하고 천대받았던 이들이 남이 아니라 또 다른 ‘나’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이끈다. 이 인식은 우리에게 엄청난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하며 밝은 미래로 인도할 것이다. 무상성을 통해 우리가 서로를 환대하고 받아들일 때,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 성장하고 발전해 나갈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받아들임과 수용의 역사를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다른 이들에게 열려 있는 무상성’은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경쟁은 ‘같은 목적에 대해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룸’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경쟁 사회 안에서 상대를 이겨야 자기 존재가 가능하다는 당위성이 주어진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이 떠오름과 동시에 뒤쳐진 이들은 ‘더 이상 쓸모없는’ 인간 존재로서 수단화 될 뿐이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는 예수의 말씀을 교황은 “우리는 생명을 얻으려고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습니다”라고 이 시대에 강조하고 있다. 다른 이들이 기꺼이 그리고 ‘무상으로’ 환대하는 사회적·정치적 문화만이 미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거저 받았는데, 거저 주는 것이 아까운 그 이유는 왜일까? 그 이유를 내 자신에게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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