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바람만이 아는 대답’
2021년 05월 28일(금) 02:10 가가
내가 태어난 그해에 밥 딜런이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나, 이번엔 존 바에즈가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불 속에서 잠이 깬 순간, 이 노래가 머릿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참 머릿속 노래를 듣고 있다가, 일어나 유튜브를 뒤졌다. 존 바에즈의 노래가 익숙한 터라 1978년도 그녀의 콘서트 영상을 보았다. 빽빽하게 모여 말없이 얌전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 요즘의 산만하기 짝이 없는 21세기의 인류에 비하자면 불과 반세기 전이지만 일상이 차분하다. 존 바에즈의 목소리로 듣다가, 밥 딜런의 목소리로 듣다가…. 여러 차례 듣다 보니 새벽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내가 자라던 70년대에 우리나라의 대중가요는 팝송이 대부분이어서 나 역시 팝송을 들으며 자랐다. 사이먼 앤 가펑클, 닐 다이아몬드, 존 바에즈…. 이 사람들 이름 석자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듣고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이 새벽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이유 없이 옆사람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며 ‘일상이 증오’라는 기사 제목이 눈에 띈다. 그냥 ‘패스’, 기사는 바람처럼 나를 스치듯 지나간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70년대, 80년대에 한마음으로 갈망했던 것이 이토록 가볍고도 천박한 삶이었을까? 밥 딜런, 존 바에즈, 그리고 ‘이 산하에’를 정말 멋지게 부르던 노찾사 시절의 김광석이 그토록 갈구하던 삶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회한이 이토록 마음속을 헤집고 다니는데, 어찌 마음이 덤덤할 수 있을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어느 햇살 좋은 봄날, 햇살이 기분 좋게 일렁이는 방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이 노래를 듣던 10대 시절의 나를 상상한다. 슬픔도 아니고, 그렇다고 분노도 아닌 그 무엇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것은 아마도 지난 삶에 대한 후회인 듯하기도 하고, 인간에 대한 환멸 같기도 하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에 대한 간절한 희망 같기도 하다. 복잡미묘한 감정이 가슴 아래 저 깊은 곳에서 파도친다. 그렇다. 파도는 표면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파도는 저 깊은 바다 속에서도 격하게 휘몰아 친다. 이 새벽에 내면의 깊은 심연에 파도가 쳐서 내 몸을 ‘쿵쿵’ 하고 때린다.
멍하게 존 바에즈를 듣고 있자니, 유튜브에서 그녀가 부르는 다른 노래들이 연이어 나온다. 그녀는 40년이 지난 2018년에도 기타를 메고 라이브로 노래한다. 머리카락 색이 달라지고, 목소리가 약간 거칠어지고, 등이 조금 앞으로 굽고, 덩치가 제법 왜소해진 것 말고는 달라진 건 없다.
의외의 사실이지만 감정은 상식과 무관하게 작동한다. 격앙되고 분노하고 흥분해야 마땅한 상황엔 오히려 무덤덤하다. 반면 별것 아닌 일엔 마음이 몹시 복잡해지곤 한다. 이 새벽에 존 바에즈를 듣다가 깊은 회한에 잠겨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게 그런 경우다.
새벽 예불 나갈 시간이다. 존 바에즈를 그냥 틀어놓고 예불을 나간다. 다시 돌아올 빈방에서 그녀가 날 반겨주길 바라면서, 나는 새벽 예불을 나간다.
부처님께 한번 물어봐야겠다. “우리…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 맞죠? 이건 아니지요? 도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요?” 아무래도 이번 생은 뭔가 고장난 것 같다. 나 혼자 잘못해서라기 보다, 모든 삶이 얽히고 설켜 있다. 그냥 뭉뚱거려서 21세기의 인류가 고장 난 것 같다. 그렇다고 반품할 수도 없다. 환불 불가라 해도 반품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반품하고 싶지만, 우리네 삶은 반품 불가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는 물러설 곳 없는 외길 인생을 아슬아슬 헤쳐 왔다. 엉망진창에 실수투성이일지라도 우리가 걸어온 길이다. 고장 나고 삐걱거릴지라도, 하나뿐인 우리들의 삶이다. 그래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삶이다.
다시 오월이 지고 있다. 살아야겠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the wind’)은 밥 딜런이 1962년 발표한 노래로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불 속에서 잠이 깬 순간, 이 노래가 머릿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참 머릿속 노래를 듣고 있다가, 일어나 유튜브를 뒤졌다. 존 바에즈의 노래가 익숙한 터라 1978년도 그녀의 콘서트 영상을 보았다. 빽빽하게 모여 말없이 얌전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 요즘의 산만하기 짝이 없는 21세기의 인류에 비하자면 불과 반세기 전이지만 일상이 차분하다. 존 바에즈의 목소리로 듣다가, 밥 딜런의 목소리로 듣다가…. 여러 차례 듣다 보니 새벽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멍하게 존 바에즈를 듣고 있자니, 유튜브에서 그녀가 부르는 다른 노래들이 연이어 나온다. 그녀는 40년이 지난 2018년에도 기타를 메고 라이브로 노래한다. 머리카락 색이 달라지고, 목소리가 약간 거칠어지고, 등이 조금 앞으로 굽고, 덩치가 제법 왜소해진 것 말고는 달라진 건 없다.
의외의 사실이지만 감정은 상식과 무관하게 작동한다. 격앙되고 분노하고 흥분해야 마땅한 상황엔 오히려 무덤덤하다. 반면 별것 아닌 일엔 마음이 몹시 복잡해지곤 한다. 이 새벽에 존 바에즈를 듣다가 깊은 회한에 잠겨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게 그런 경우다.
새벽 예불 나갈 시간이다. 존 바에즈를 그냥 틀어놓고 예불을 나간다. 다시 돌아올 빈방에서 그녀가 날 반겨주길 바라면서, 나는 새벽 예불을 나간다.
부처님께 한번 물어봐야겠다. “우리…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 맞죠? 이건 아니지요? 도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요?” 아무래도 이번 생은 뭔가 고장난 것 같다. 나 혼자 잘못해서라기 보다, 모든 삶이 얽히고 설켜 있다. 그냥 뭉뚱거려서 21세기의 인류가 고장 난 것 같다. 그렇다고 반품할 수도 없다. 환불 불가라 해도 반품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반품하고 싶지만, 우리네 삶은 반품 불가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는 물러설 곳 없는 외길 인생을 아슬아슬 헤쳐 왔다. 엉망진창에 실수투성이일지라도 우리가 걸어온 길이다. 고장 나고 삐걱거릴지라도, 하나뿐인 우리들의 삶이다. 그래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삶이다.
다시 오월이 지고 있다. 살아야겠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the wind’)은 밥 딜런이 1962년 발표한 노래로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