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국가를 노래하는가 - 최유준 전남대 호남학과 교수
2021년 05월 17일(월) 08:00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라는 제목의 작은 책이 있다. 미국의 페미니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가 인도 출신의 탈식민주의 이론가 가야트리 스피박과 나눈 대담을 엮은 책이다. 제목의 ‘노래하는가?’는 은유적 표현만은 아니다. 버틀러가 대담 중에 ‘국가(國歌) 부르기’에 대한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에 대한 비중 있는 토론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사례는 대담이 이루어지던 2006년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불법’ 거주자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부른 스페인어 가사의 미국 국가에 대한 것이다.

버틀러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우리의 국가’(Nuestro hymno)로 불리는 스페인어 미국 국가의 등장은 민족의 복수성에 대해, 그리고 ‘우리’와 ‘우리 것’의 의미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국가는 누구에게 속하는 걸까요?” 미국과 같은 명시적 다인종·다민족 사회에서 이러한 물음은 주류인 ‘백인 앵글로색슨 기독교도’(WASP) 중심의 민족국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버틀러가 제시한 사례와 그에 따른 물음은 단일민족 신화가 여전히 강고한 한국 사회에서는 실감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번안된 ‘애국가’를 부르며 권리 투쟁을 하는 ‘불법’ 거주자들을 한국 내에서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최근 한국계 미국인의 삶과 기억을 다룬 영화 ‘미나리’조차 미국 내 소수민족 이주민 서사에 주목하기보다는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등을 둘러싼 ‘한국적 자부심’으로 고양되는 게 한국적 현실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국가나 민족 개념에 대한 이의 제기는 구체화된 사회정치적 맥락을 얻기 어렵다. 소수민족이나 이주민이 아니라면 이들을 대신하여 다른 어떤 집단이 한국 내에서 민족주의 비판을 수행할 수 있을까? 버틀러의 물음에 상응하여 제시할 만한(사실상 더 급진적인) 한국의 사례가 있다. 41년 전 옛 전남 도청 앞에서 광주 시민들이 부른 ‘애국가’다. 버틀러 식으로 물음을 던져 보자. ‘폭도’로 매도된 이들이 부른 국가, 그것은 누구에게 속한 것일까?

자발적으로 수행되는 ‘국가 부르기’는 위로부터의 국민 동원과 통제의 의미만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권리 주장이나 전유, 나아가 점거의 의미도 만들어 낼 수 있다. 5·18 당시의 애국가 부르기는 버틀러가 예로 든 스페인어 미국 국가와도 유사한 수행적 의미를 형성해 냈다.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이 자주 불렀던 또 다른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함께 이들이 부른 ‘애국가’는 민족의 복수성에 대해 그리고 ‘우리’와 ‘우리 것’의 의미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광주’를 특수화 내지 특권화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내 지역 담론이 부여받은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는 일이다. 즉 한국 내 ‘지역(들)’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가 초래할 수 있는 폭력에 대한, 나아가 어느 특정 위치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모든 ‘중심주의(서양 중심주의, 수도권 중심주의, 남성 중심주의 등)’에 대한 저항과 비판을 수행할 수 있으며 이를 수행할 책임이 있다. 요컨대 한국에서 지역과 지역 담론은 명시적 다민족 사회의 이주민이나 소수민족의 저항 담론 그리고 젠더 담론과도 만나는 지점이 있다. 이를 ‘비판적 지역 담론’ 혹은 ‘비판적 지역학’이라고 이름 붙여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버틀러의 물음에 화답하여 스피박이 ‘비판적 지역주의’를 제안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민족과 국가 개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세계의 맥락에서 지역적 공동체의 의미를 재성찰하고 이에 맞게 국가의 기능을 재조정하도록 촉구하는 것을 뜻한다.

광주와 지역의 관점에서 볼 때 ‘누가 국가를 노래하는가?’라는 물음은 새삼 다의적(多意的)이며, 사실상 다양한 목소리가 교차하는 다성적(多聲的) 물음이 된다. 민족과 국가는 이러한 다성화된 지역적 목소리들에 응답할 때에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41주년을 맞은 5·18에 대한 기억과 ‘비판적 지역 담론’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만 2년간의 고정 칼럼 집필을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