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준 전남대 호남학과 교수] ‘클래식 음악하기’
2021년 04월 19일(월) 00:00
다음 주 주말 광주 ACC 예술극장2에서 열릴 예정인 정명훈 피아노 독주회를 감상하기 위해 시간에 맞추어 티켓 예매를 시도했다. 하지만 접속자 수 초과로 웹페이지가 한동안 먹통이 되고 말았다. 5분 정도 지나 겨우 접속이 되었을 때는 이미 예매 가능한 좌석수가 많이 남지 않았다. 그 가운데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서둘러 예매를 마치고 나왔다. 좌석 거리 두기 원칙으로 300석이 채 안 되는 한정된 좌석수였다는 점을 고려해도 매진의 빠른 속도는 놀라웠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장르를 불문하고 음악가들이 1년 넘게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클래식 음악 장르의 대중적 인기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여러 징후가 보인다. 여전히 유명 음악가나 음악 단체에 편중되는 음악회 티켓 판매율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클래식에 대한 대중적 관심 자체가 조금씩 늘어간다는 뜻이다.

이 점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계기로 많은 전문 음악가와 음악 단체들이 유튜브와 여러 SNS 매체를 통로로 양질의 클래식 음악 콘텐츠를 대중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게 된 상황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댄스 비트의 케이팝과 다소 과장된 감성의 트로트 음악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새로 클래식에 입문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출판 시장에서 클래식 관련 교양서 발간의 눈에 띄는 증가와 상당히 높은 판매고로도 나타난다.

클래식은 악보 사용을 중심으로 하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다른 장르의 음악과 차별성을 보인다. 한데 이러한 악보의 기능과 관련해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악보를 읽을 줄 아는 소수 전문가(전공생)의 음악이라는 식의 오해가 그것이다. 하지만 선입견 없이 이런 물음에 답해 보자.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이와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하는 이가 있다면 어느 쪽이 아마추어일 가능성이 높을까? 당연히 악보를 보는 쪽이다. 서양 근대 음악사의 전개 과정에서 악보는 음악 시장의 발전과 맞물려 잠재적 악보 소비자로서의 아마추어와 대중을 상대로 발전하고 표준화되어 왔다. 악보를 매개로 한 이러한 광범위한 ‘대중성’이야말로 ‘클래식’이라 불리는 서양 근대음악의 한계이자 장점이다.

클래식 기타를 전공한 어느 후배는 코로나 직전부터 간단한 기타 편곡 악보와 시범 연주를 동시 제공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왔는데, 조만간 20만 구독자를 달성할 예정이라고 알려 왔다. 그 구독자들은 대부분 유튜브 채널을 이용하여 클래식 기타 연주를 배우거나 즐기는 아마추어들이다. 비교적 단기간에 20만 명이라는 놀라운 수의 구독자를 모을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한 가지는 악보가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곡명 외에는 아무런 설명이나 자막도 없이 악보와 연주 동영상만을 담고 있는 유튜브 채널이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소용이 된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이러한 비대면 소통은 악보에 거의 모든 음악적 정보를 담는 클래식 장르에 유리한 일이다.

클래식이 ‘전문가들만의 음악’처럼 간주된 것은 사실상 ‘음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20세기 들어서의 일이다. 레코딩과 음반은 한편으로 실수 없는 정밀한 연주를 요청하며, 대량 소비의 음반산업 메커니즘은 독점적 스타의 희소성을 찾기 마련이다. 이 시기 ‘불후의 명반’에 담긴 ‘명연주’들은 기념할 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스타 연주자들의 몸값을 턱없이 올리려는 기획사들의 담합이 커져 가고 있었다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하다. 그런 음반의 시대가 디지털 매체 혁명과 함께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 다시 전문가 중심의 음악에서 아마추어 중심의 음악으로의 전환을 기대할 수 있을까.

크리스토퍼 스몰은 음악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주장하면서 ‘음악하다’ 혹은 ‘음악하기’(musicking)라는 용어의 적극적 사용을 제안했다. 그런 그가 남긴 다음과 같은 역설적 표현이 있다. “음악은 너무 중요해서 음악가들에게 맡겨 둘 수 없다.” 이러한 역설적 표현은 전문 음악가들의 가치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예컨대 정명훈과 같은 음악 장인이 다루는 피아노는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음악 장인의 손길에 대해 찬탄만을 늘어놓는다면 그것은 음악을 여느 ‘기술’과 다름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일이다.

예술이 기술과 다를 수 있는 이유는 종종 ‘기술적’ 수준과는 무관한 ‘예술적’ 소통의 차원이 인간 본연의 역량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와 전문가 사이의 다리를 놓는 것은 ‘클래식 음악하기’의 가능성이자 본질이다.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