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준 전남대 호남학과 교수] 대학 가요와 ‘벚꽃 엔딩’
2021년 03월 22일(월) 08:00 가가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시기다. 지난주 전남대 교정의 홍매화가 활짝 피어나더니 홍매화 앞에서 기념 촬영하는 이들의 모습도 많이 보인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엄습했던 작년 이맘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교정의 활기가 느껴진다. 이제 곧 교정은 벚꽃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할 것이다.
태어나서 열두 살 때까지 벚꽃이 일찍 피는 부산에서 살았다. 이후 목포로 이사 와서 보냈던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이르러서야 내 정체성이 형성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부산에서의 어린 시절 기억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도 부산에서의 파편화된 기억들 가운데에는 몇몇 대중문화 체험들이 있다. 부산에서는 성능 좋은 안테나만 달면 일본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우리는 아버지가 어디선가 구입해 온 일본제 컬러텔레비전으로 일본 NHK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다. 컬러 화면으로 재현되는 일본의 풍경들은 흑백 화면 속 한국의 풍경과 현격한 대비를 이루었다. 컬러풀한 일본이 미래의 모습이라면 흑백의 한국은 과거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비대칭적 시간 감각은 비단 일본과 한국 사이의 관계에서만 생긴 것은 아니다. 당시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TBC의 드라마가 인기가 많았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부산에서의 TBC 드라마는 서울에서보다 한 주씩 늦게 방영되었다. 한번은 서울에서 부산을 방문한 친척이 드라마 줄거리를 이미 알고 얘기해 주었다. 한데 어린 마음에는 그게 너무 신기하게 느껴져 그가 마치 미래에서 온 듯했다. 한국에서 ‘제2의 도시’라는 대도시 부산이었지만 서울에 비하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여겨진 것이다.
그래도 당시 큰 인기를 모았던 대학가요제가 유년 시절의 대중문화 체험에서 비대칭적 시간 감각을 교정해 주고 있었다. 1978년에 열린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부산대학교 중창단 ‘썰물’이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라는 노래로 대상을 수상했다. 적어도 ‘대학 가요’라는 노래의 세계는 지역적으로 평등하며 동시적으로 느껴졌다고 할까. 그 무렵 김만준의 ‘모모’라는 노래가 MBC ‘금주의 인기가요’ 차트 1위에 오르기까지 했는데, 이 노래는 광주의 대학생이 부른 노래였다.
1979년에 목포로 이사한 뒤부터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은 좀 더 또렷해진다. 그해 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한 전남대 트리오의 ‘영랑과 강진’이라는 노래가 각별하게 느껴진 이유도 실은, 내가 살던 장소와 가까운 지역 대학생들의 노래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 노래를 부르고 지은 전남대생 김종률은 광주 지역 방송인 전일방송(VOC) 주최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 대학가요제는 1978년부터 1980년말 신군부에 의한 언론통폐합의 여파로 전일방송이 문을 닫을 때까지 단 3회만 개최됐는데, 그럼에도 하성관의 ‘빙빙빙’을 포함한 여러 전국적인 히트곡을 생산했다.
요컨대 이 시기의 ‘대학 가요’는 ‘지역발 전국 동시 히트곡’을 현실화하는 영역이었다. 따라서 ‘히트곡’ 자체보다 그러한 현상의 배경을 이루는 지역 대학가의 활발한 노래 문화가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만하다. 이러한 노래 문화는 1980년대의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저항가요’ 운동으로도 이어졌다. 예컨대 김종률이 지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또 다른 ‘광주발 전국 동시 히트곡’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대학 가요’의 영역에서조차 그러한 동시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오늘날 전 지구적 동시성을 실현시키는 디지털 매체 속에서 ‘한국 문화’의 국제적 위상은 일견 높아져 있지만 ‘한국 내 지역 문화’의 현실은 그다지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지역발 노래가 전국에서 들리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상상하기조차 어려워진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버스커버스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장범준은 상명대 재학 시절 벚꽃 떨어지는 대학 교정을 떠올리며 ‘벚꽃 엔딩’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이 노래는 발표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해마다 벚꽃 필 무렵이면 전국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히트곡이 되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노래 제목은 벚꽃이 지는 순서대로 지방대학이 사라질 것이라는, 지방대 소멸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노래의 낭만에 끔찍한 현실이 교차된다고나 할까. 지방대 소멸 현상은 노래 제목과 연관되어 내게 ‘학생들이 어떻게 노래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로 다가온다. 이 엄혹한 시기에 웬 한가한 노래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과거’에 묶인 지방 도시의 시간 감각을 되찾는 것은 벚꽃을 노래하는 마음을 되찾는 일과도 같을 것이다.
그래도 부산에서의 파편화된 기억들 가운데에는 몇몇 대중문화 체험들이 있다. 부산에서는 성능 좋은 안테나만 달면 일본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우리는 아버지가 어디선가 구입해 온 일본제 컬러텔레비전으로 일본 NHK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다. 컬러 화면으로 재현되는 일본의 풍경들은 흑백 화면 속 한국의 풍경과 현격한 대비를 이루었다. 컬러풀한 일본이 미래의 모습이라면 흑백의 한국은 과거의 모습이었다.
1979년에 목포로 이사한 뒤부터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은 좀 더 또렷해진다. 그해 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한 전남대 트리오의 ‘영랑과 강진’이라는 노래가 각별하게 느껴진 이유도 실은, 내가 살던 장소와 가까운 지역 대학생들의 노래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 노래를 부르고 지은 전남대생 김종률은 광주 지역 방송인 전일방송(VOC) 주최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 대학가요제는 1978년부터 1980년말 신군부에 의한 언론통폐합의 여파로 전일방송이 문을 닫을 때까지 단 3회만 개최됐는데, 그럼에도 하성관의 ‘빙빙빙’을 포함한 여러 전국적인 히트곡을 생산했다.
요컨대 이 시기의 ‘대학 가요’는 ‘지역발 전국 동시 히트곡’을 현실화하는 영역이었다. 따라서 ‘히트곡’ 자체보다 그러한 현상의 배경을 이루는 지역 대학가의 활발한 노래 문화가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만하다. 이러한 노래 문화는 1980년대의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저항가요’ 운동으로도 이어졌다. 예컨대 김종률이 지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또 다른 ‘광주발 전국 동시 히트곡’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대학 가요’의 영역에서조차 그러한 동시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오늘날 전 지구적 동시성을 실현시키는 디지털 매체 속에서 ‘한국 문화’의 국제적 위상은 일견 높아져 있지만 ‘한국 내 지역 문화’의 현실은 그다지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지역발 노래가 전국에서 들리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상상하기조차 어려워진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버스커버스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장범준은 상명대 재학 시절 벚꽃 떨어지는 대학 교정을 떠올리며 ‘벚꽃 엔딩’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이 노래는 발표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해마다 벚꽃 필 무렵이면 전국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히트곡이 되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노래 제목은 벚꽃이 지는 순서대로 지방대학이 사라질 것이라는, 지방대 소멸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노래의 낭만에 끔찍한 현실이 교차된다고나 할까. 지방대 소멸 현상은 노래 제목과 연관되어 내게 ‘학생들이 어떻게 노래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로 다가온다. 이 엄혹한 시기에 웬 한가한 노래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과거’에 묶인 지방 도시의 시간 감각을 되찾는 것은 벚꽃을 노래하는 마음을 되찾는 일과도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