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줄의 값
2021년 03월 15일(월) 05:30
윤동주를 비롯해 ‘시인들이 흠모한 시인’이 있다. 훤칠한 키와 준수한 외모에 연극 등 문화에 조예가 깊었던 백석(1912~1996)이 그 주인공이다. 한때 그는 ‘월북 작가’라는 이유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토속적인 언어와 세련된 감각으로 1930~40년대 시단을 풍미했다.

백석은 젊은 시절 자야(子夜·김영한)라는 여인과 애틋한 사랑을 나눴다. 20대 영어 교사 시절 요릿집에서 처음 만난 기생 자야와의 인연은 그의 문학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다. 자야는 이태백의 ‘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따온 것으로, 백석이 그 여인에게 붙여 준 애칭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6·25전쟁으로 생이별을 하게 된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에는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나타샤’는 자야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6·25 때 남으로 내려온 김영한은 요릿집을 운영해 큰돈을 번다. 그리고 ‘서울의 3대 요정’인 대원각의 주인이 된다. 그러나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철학에 감동을 받아 1천억 원이 넘는 대원각을 선뜻 내놓았고 이러한 시주 덕분에 길상사가 창건될 수 있었다. 김영한은 생전에 “1천억 원의 재산이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얼마 전 카카오 창업주 김범수 의장이 재산의 절반인 5조 원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결심은 미국 시인 왈도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가 계기가 됐다고 한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에머슨의 시는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한다. 코로나로 각박한 시대이지만 한 편의 시는 더러 적잖은 위로와 감동을 준다. 그 시 한 줄의 값을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 것인가.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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