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나무’
2021년 03월 09일(화) 05:00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130번지에 자리한 금사정(錦沙亭)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515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수령 500여 년을 헤아리는 이 나무는 아름드리 밑둥에서 굵은 줄기가 갈라져 나와 반구형 모양새를 이뤘다.

나무의 유래는 조선 중종 14년(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암(靜菴)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개혁파’ 선비들은 ‘훈구파’ 관료들의 음모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때 성균관 생원 임붕 등 나주 출신 선비 11명이 조광조의 억울함을 상소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후일을 도모하며 낙향한다.

고향에 내려온 이들은 울분을 삭히며 마을 앞으로 흘러가는 영산강 이름을 딴 ‘금강계’(錦江契)를 조직했다. 그리고 수년 후 정자를 짓고 그 앞에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는 그의 저서 ‘한국의 나무 특강’(휴머니스트 펴냄)에서 ‘동백꽃의 핏빛 절규처럼 좌절한 그들의 울분도 언젠가는 화려하게 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담은 것’이라고 풀이한다.

한편 담양읍을 가로지르는 담양천변에 조성된 관방제림(官防堤林·천연기념물 제366호)은 푸조나무·느티나무·팽나무 등 수백 그루의 고목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숲이다. 조선 인조 26년에 부사 성이성이, 철종 5년에 다시 부사 황종림이 이곳에 제방을 축조하고 나무를 심었다고 전해 온다. 이처럼 치수(治水)에 큰 뜻을 품은 관리와 백성들 덕분에 수백 년 뒤 우리 후손들은 사계절 아름다운 숲길을 거닐며 힐링할 수 있게 됐다.

최근 불거진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광명·시흥 지구 땅 사전 투기 의혹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들은 사전 정보를 갖고 사들인 토지에 보상 가격을 높일 목적으로 편백나무와 왕버드나무 등을 심었다고 한다. 이러한 ‘한탕주의’ 나무 심기는 굳은 절개를 지키거나 물난리를 막겠다는 선인들의 나무 심기와는 확연히 비교된다.

이번 주말에는 과거 우리 선인들처럼 나무 한 그루 심어 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이 심고 가꾼 그 ‘반려나무’가 답답한 코로나19를 이겨 낼 수 있는 동반자가 될지도 모르니까.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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