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 현대계획연구소 소장] 기억의 방법
2021년 03월 08일(월) 08:00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들 한다. 잊는다는 것은 필연적이면서도 당연한 것이다. 그 당연한 것이 당연해지지 않게 된다면? 태어날 때부터 살아온 날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는 차라리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을 원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망각만큼 기억 또한 중요하다. 기억을 하지 못하는 삶 역시 상상할 수 없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나누는 기준이 문자의 유무일 만큼 오래전부터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기록해 왔고 기록을 통해 기억해 왔지 않은가. ‘과거의 긴 그림자’ ‘기억 속의 역사’ 등의 저자인 독일 콘스탄츠대학 교수 알라이다 아스만은 기억을 문화적 기억과 소통적 기억이라는 용어로 나누었다.

문화적 기억은 일반적인 텍스트에 바탕을 둔 채로 시대를 포괄하는 개념이고, 소통적 기억은 구두로 전승된 회상들을 일컫는다. 인류는 박물관이나 기념비·기록물 등을 통해 기억을 전승한다. 왜냐하면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시대의 증인들을 통한 소통적 기억이 어느 미래에 상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문화적 기억으로 남겨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광주시가 일제 수탈의 아픔과 산업화 시기 여공들의 애환이 서린 근대 산업문화 유산인 옛 전방과 일신방직 광주공장 부지 개발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제가 주도했지만 우리나라 산업혁명의 역사가 묻어 있고 87년여 세월 동안 축적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곳이다. 이곳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5대 문화권 계획에서 근대 산업 유산을 이용한 시민예술촌으로 제안되기도 했다. 또한 도시재생 계획에서는 도시경제기반형 재생지역으로 근대 산업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개발하는 등 역사 문화적 측면의 계획들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개발업체에서는 공장부지를 공업용지에서 상업용지나 주거용지로 변경해 상업시설, 업무시설, 주상복합시설 등으로 조성하겠다는 제안서를 제출한 상황이다. 이에 광주시는 사전 부지 협상 선정을 위한 전문가 합동 기획단을 구성해 부지 조사 용역을 진행하고 있고, 곧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현재 일부 시민사회에선 체험·교육 공간 등 공공성을 확보한 개발을 요구하고 있다. 일제 적산이었던 점을 고려해 일정 부분은 시민을 위하여 환원되어야 하므로 일반 시민을 위한 역사공간과 문화공간으로 조성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현재 전방·일신방직에 보존된 건축물은 1930년대 근대건축물 4동, 1950년대 22동, 1960년대 26동, 1970년대 30동, 1980년대 이후 203동 등 총 259개 동이 남아 있다. 개발 업체 측은 철저한 전문가 검토를 전제로 보존 가치가 있는 근대 산업유산을 최대한 보존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1934년 일신방직 공장 건설 당시 철골구조로 지은 화력발전소와 고가수조·보일러실 등 근대 산업유산으로 상징성을 가진 기존 시설 등 일부 중요한 시설은 보존하고 근대산업박물관을 조성하는, ‘일부 보존을 통한 개발 계획’이다.

광주시는 문화유산이라 해도 과도하게 보존함으써 시민이 필요한 인프라나 편의시설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가진 시민도 많다고 했다. 광주를 사랑하는 방식이나 이해관계가 달라 150만 시민 모두가 손뼉 칠 안을 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다수 시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겠다고 강조했다.

어찌 됐든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여러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는 만큼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논의하고 결론을 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장기화됨으로써 많은 물리적·행정적·금전적 손실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이에 따라 갈등은 지속적으로 커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시민단체와 지역민이나 사업자 등의 의견 대립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현재 논의 중에 있는 광천동 시민아파트 원형 보존이나 또 언젠가 논의될 동구의 옛 광주적십자병원 등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처럼 많은 역사적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나 공간에 대해서는 한 가지 틀에서만 모든 것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역사적 자산을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행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활용할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국내외 사례들이 매우 많다. 따라서 다양한 기억의 방법들에 대한 사례들을 면밀히 살펴보고, 과거·현재·미래의 다양한 시점에서 유연한 시선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