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도자기는 어떻게 유럽서 꽃 피웠나
2021년 03월 06일(토) 20:00 가가
유럽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조용준 지음
도자와 타일은 어떻게 다를까? 대부분 사람들은 차이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다음의 설명을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300℃ 이상의 고온에서도 갈라지지 않고 견딜 수 있는 흙은 자기로, 견디지 못하는 흙은 타일로 그 운명이 나뉜다. 따라서 도자 기술이 발달하면 타일 제조 기술도 발전한다. 도자기는 초벌구이 위에 손으로 그림을 그려 다시 구워내는 것이니 도자기 그림을 잘 그리는 장인들은 타일 위에도 그림을 잘 그린다.”
작가이자 전직 기자인 조용준은 품격있는 도자기와 접시, 찻잔을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랑한다고 한다. 그는 도자기로 된 찻잔이나 화병, 촛대, 그릇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이번에 조용준 작가가 발간한 ‘유럽 도자기 여행’은 동유럽 편에 초점을 맞췄다. 책은 지난 2014년 발간한 개정판으로 이전보다 더 많은 콘텐츠를 담았다. 도자기 하나에 동서양 역사와 문화 융합이 담겨 있다는 사실은 사뭇 흥미롭다.
첫 출간 당시 유럽 도자기 이야기는 입소문을 통해 마니아층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에르메스 찻잔 하나로 지중해 푸른 바다와 포르투갈의 성당을 떠올렸으니.
사실 저자는 도자기 문외한이었다. 그런데 에르메스의 블뢰 다이외르에 마음을 빼앗긴 후로는 ‘블루’에 대한 탐욕과 동경이 일었다. 자연스레 도자기에 빠져들었다. 동양의 자부심이던 도자기가 어떻게 유럽으로 건너가 꽃을 피웠는지 알고 싶었다.
실제 블뢰 다이외르의 코발트블루는 16세기 명나라와 원나라의 청화백자, 사마르칸트의 모스크와 첨탑에서 왔다고 한다. 식기 표면은 기하학적 패턴과 동양의 국화 문양에서 차용됐다.
독일의 마이슨을 찾는 여행자 대부분은 도자기 회사를 방문할 만큼, 이곳은 유럽 ‘도자기 성지’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에서 생산하던 경질 도자기를 유럽 최초 생산했다.
“마이슨 도자기가 유럽 왕실 외교를 위한 선물로 사용된 것은 1713년의 일로 아우구스트 1세가 하노버 선제후의 왕비이자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의 딸인 조피(1603~1714)에게 보낸 것이다. 광적인 도자기 수집가이자 감정가였던 조피는 죽을 때 수백 점의 도자기를 남겼는데, 이 중 남아 있는 것은 마이슨 찻잔과 받침 두 개뿐으로 런던 영국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마이슨 동남쪽에 자리한 드레스든은 유럽 도자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츠빙거 궁전은 아우구스트 1세 시기인 1710년 착공해 1728년 완성했다. 아우구스트 1세는 동양 도자기를 광적으로 수집했는데 당시 유럽 왕실에서는 ‘시누아즈리’라고 불리는 중국풍 동양 문물이 유행했다. 특히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년에 최대 800만 점의 도자기를 중국과 일본”을 통해 공수했다.
놀라운 것은 드레스든 박물관에는 “일본 도자는 조선 도공 이삼평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 맥락은 이렇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열도를 통일할 즈음 다도가 유행했다. 조선을 침공해 퇴각할 무렵 수천 명의 도공을 붙잡아갔다. 이삼평도 끌려갔는데, 아리타에서 태토를 발견해 백색도자기를 만들었다. 이를 근거로 “드레스든에 전시돼 있는 일본과 마이슨 도자기의 모든 것이 조선 도공 이삼평”에서 시작됐다는 말은 적확한 표현이다.
한편 저자는 “유럽 도자기 브랜드의 대대적 공세는 한·중·일 3국이 도자 문화의 원류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며 “그런 마음도 당연한 것이 예쁜 찻잔, 내가 끌리는 접시는 마음까지 치유해주기 때문”이라고 부연한다.
<퍼시픽 도도·2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1300℃ 이상의 고온에서도 갈라지지 않고 견딜 수 있는 흙은 자기로, 견디지 못하는 흙은 타일로 그 운명이 나뉜다. 따라서 도자 기술이 발달하면 타일 제조 기술도 발전한다. 도자기는 초벌구이 위에 손으로 그림을 그려 다시 구워내는 것이니 도자기 그림을 잘 그리는 장인들은 타일 위에도 그림을 잘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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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블뢰 다이외르의 코발트블루는 16세기 명나라와 원나라의 청화백자, 사마르칸트의 모스크와 첨탑에서 왔다고 한다. 식기 표면은 기하학적 패턴과 동양의 국화 문양에서 차용됐다.
독일의 마이슨을 찾는 여행자 대부분은 도자기 회사를 방문할 만큼, 이곳은 유럽 ‘도자기 성지’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에서 생산하던 경질 도자기를 유럽 최초 생산했다.
“마이슨 도자기가 유럽 왕실 외교를 위한 선물로 사용된 것은 1713년의 일로 아우구스트 1세가 하노버 선제후의 왕비이자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의 딸인 조피(1603~1714)에게 보낸 것이다. 광적인 도자기 수집가이자 감정가였던 조피는 죽을 때 수백 점의 도자기를 남겼는데, 이 중 남아 있는 것은 마이슨 찻잔과 받침 두 개뿐으로 런던 영국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마이슨 동남쪽에 자리한 드레스든은 유럽 도자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츠빙거 궁전은 아우구스트 1세 시기인 1710년 착공해 1728년 완성했다. 아우구스트 1세는 동양 도자기를 광적으로 수집했는데 당시 유럽 왕실에서는 ‘시누아즈리’라고 불리는 중국풍 동양 문물이 유행했다. 특히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년에 최대 800만 점의 도자기를 중국과 일본”을 통해 공수했다.
놀라운 것은 드레스든 박물관에는 “일본 도자는 조선 도공 이삼평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 맥락은 이렇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열도를 통일할 즈음 다도가 유행했다. 조선을 침공해 퇴각할 무렵 수천 명의 도공을 붙잡아갔다. 이삼평도 끌려갔는데, 아리타에서 태토를 발견해 백색도자기를 만들었다. 이를 근거로 “드레스든에 전시돼 있는 일본과 마이슨 도자기의 모든 것이 조선 도공 이삼평”에서 시작됐다는 말은 적확한 표현이다.
한편 저자는 “유럽 도자기 브랜드의 대대적 공세는 한·중·일 3국이 도자 문화의 원류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며 “그런 마음도 당연한 것이 예쁜 찻잔, 내가 끌리는 접시는 마음까지 치유해주기 때문”이라고 부연한다.
<퍼시픽 도도·2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