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애써 살려놨는데…쑥대밭 된 하우스에 망연자실
2025년 07월 20일(일) 19:55
수해 피해 나주·함평 농가 현장 가보니
전남 최소 12개 오리 농가 피해
함평서만 오리 2만8000마리 폐사
감초 하우스 죄다 물에 잠겨
작물보험 적용도 안돼 한숨
20㏊ 논콩 하루아침에 사라져
방울토마토 최소 100억원 손실

20일 이랑기(왼쪽)씨와 김태완·김단아씨가 나주시 동강면의 하우스에서 수해를 입은 방울 토마토와 감초를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다. /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전남 농민들이 폭염 속에서 농축산물을 지키기 위해 사투해 온 것이 무색하게 ‘도깨비 폭우’로 농작물과 가축 등을 잃는 처지에 놓였다.

20일 나주, 함평 등 전남 곳곳의 농가는 하룻밤 사이 축사와 하우스, 논밭 등이 침수되면서 가축과 작물이 전멸한 상태였다.

◇폭염에 애지중지 키웠는데=함평군에서 2만8000마리의 오리를 키우는 박서군(69)씨는 부화한 지 7일도 되지 않은 병아리들을 폭우로 모두 잃었다. 최근 폭염이 이어지자 스프링클러로 물을 뿌려 가며 애지중지 키웠던 오리들인 터라 박씨의 상실감은 더욱 컸다.

박씨는 “오리 새끼값이 다하면 2600만원이다. 지난 11일에 태어난 애들인데 동 옮겨주자 마자 다 죽었다”며 “사료를 1500만원어치도 다 부어놨는데 통에 빗물이 차버려서 나중에 쓰지도 못하고 버려야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국오리협회 광주전남지회에 따르면 이번 장맛비로 나주 6개, 함평 4개, 무안 1개, 광주 1개 등 최소 12농가가 침수로 피해를 입었다. 아직 피해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거나 자체 복구 중인 농가까지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피해 농가 대부분은 저지대에 위치한 곳으로 일부 농가는 전체 계사가 침수됐고, 상당수는 30~70% 수준의 침수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영옥 광주전남오리협회장은 “올해는 더위가 유독 빨리와서 다들 열심히 살려놨는데 이제는 물에 휩쓸려가니 망연자실할수밖에 없다”며 “농가들이 그동안 폭염을 견디게 하느라 지붕에 물 올리고, 내부에 안개도 분무하고, 팬도 열심히 돌려서 겨우겨우 살려놓은 애들인데 결국 물 차서 다 죽었으니 얼마나 힘들겠냐”고 말했다.

◇소득 작물로 기껏 바꿨는데=영암군 군서면에서 논콩을 키우는 김지흥(70)씨는 이날 폭염에도 열심히 물 대가며 키워낸 논콩이 하루 아침에 물에 잠겨버린 것을 보고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17일 영암군에 내린 폭우로 논 전체가 물에 잠기면서 콩이 모조리 죽어버린 것이다.

김씨는 정부와 행정기관의 권장에 따라 논콩 재배 면적을 지난해 10㏊에서 올해 20㏊로 두 배 이상 늘렸다. 주변 농가도 김씨의 설득에 따라 논콩 재배 면적을 늘렸는데, 이웃집 논콩까지 모조리 물에 휩쓸려갔으니 이웃들을 볼 면목도 없다는 것이 김씨 설명이다.

김씨는 “수두작(벼)은 잠겼다가 물이 빠지면 피해가 크지 않지만 콩은 물에 잠기면 거의 전멸한다”며 “이번 피해로 1억원이 넘는 손실이 예상된다. 이번처럼 큰 피해가 반복된다면 앞으로 누가 논콩을 재배하려 하겠느냐”고 말끝을 흐렸다.

20일 이랑기(왼쪽)씨와 김태완·김단아씨가 나주시 동강면의 하우스에서 수해를 입은 방울 토마토와 감초를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다. /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감초 재배로 차별화 높였는데=나주시 동강면에서 감초 하우스를 운영하는 김태완(60)·김단아(여·28)씨 부녀는 지난 19일 폭우에 수해 직격탄을 맞았다. 6개월 넘게 정성 들인 감초와 스마트팜 시설이 완전히 침수돼 전면 폐기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들은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원감’ 품종을 전국 최초로 조직배양에 성공해 국산 감초산업에 도전했지만 허사가 됐다. 시설비 5억여 원에 모종값만 1억여 원, 농약·양액비 등까지 합치면 피해 규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감초는 작물재해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피해 보상도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아씨는 “다른 작물만큼만이라도 피해 보장을 해주면 소원이 없겠다”며 “청년 창업농으로 국산 감초 산업에 도전했지만 반복되는 재해와 허술한 제도적 지원에 정말 큰 실망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이번 폭우로 생계를 위협받는 처지에 놓였다고 입을 모았다.

◇폭염에도 토마토 상품성 힘써왔는데=나주시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이랑기(58)씨는 “하우스 13동이 모두 물에 잠겨 최소 80억~100억원 손실을 봤다”며 “겨우 폭염을 버티고 살려놨는데 보험금 나오기까지 1년 가까이 버티기도 불가능하다”고 한탄했다.

인근에서 딸기, 오이, 애호박을 재배하는 정흥석(53)씨도 “폭염으로 하우스 내 평균 온도가 계속 오르니 작물의 생장점이 타격을 받아 결국 판매할 수 있는 작물량이 크게 줄어 수입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며 “최근 몇 년 사이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이 훨씬 심해지면서 매년 피해가 늘어가고 있는데 수해까지 입으니 어떻게 농사를 지으란 말인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함평·나주=김진아·서민경 기자 jingg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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