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균형 정책
2021년 03월 04일(목) 05:00 가가
동양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이룬 나라는 일본이다. 서양의 제국주의를 모방하기 시작한 일본은 한반도를 통해 대륙 진출을 꿈꿨다. 이를 위해 일제는 한반도와 만주를 잇는 철도를 자신들이 직접 건설하는 데 엄청난 공력을 기울였다. 1892년 경부철도에 대해 비밀 측량을 한 일제는 1894년 8월 20일 체결한 한일잠정합동조관의 첫 번째 항에 경부·경의 철도 부설권을 언급할 만큼 집요했다.
프랑스·영국·러시아도 철도 부설권을 호시탐탐 노렸다. 이들은 경부선보다 오히려 경목철도 즉 지금의 호남선에 눈독을 들였다. 중국과의 접근이 수월하고 곡창지대인 호남의 이익을 독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대한제국이 1898년 6월 독자적인 경목철도 부설 방안을 마련하고 추진한 것은 경부철도에 이어 경목철도까지 열강들의 손에 넘겨줄 수 없다는 절박함의 발로였다.
일제는 대한제국이나 다른 열강의 철도 부설을 막기 위해 경부철도의 노선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1885년과 1892년 두 차례 답사를 통해 일제는 다섯 가지 안을 만든 뒤 군사·경제적인 측면을 심도 있게 검토했다. 그 결과 대전을 경유지로 선택했는데, 여기에는 호남선을 지선으로 만들어 경부선에 예속하면서 동시에 별도로 호남선을 신설하려는 시도를 아예 막아 버리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지역개발상 심각한 불균형이 누적되는 경제 공간의 기본 틀이 이때 만들어진 셈이다.
일제의 한반도 장악과 대륙 진출을 위한 군사·경제적인 축이 곧 경부선이다. 하지만 일제가 물러간 뒤 이제는 경제성을 위주로 한 성장 전략이 경부 라인을 더 키우고 있다. 자체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구·시설 집적 공간에 예산을 더 밀어주는 방식의 국가 재정 분배가 균형의 추를 더 기울게 한 것이다. 해방 76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일제가 남긴 이 불균형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재영 광주전남연구원장은 ‘과거 불균형 정책을 넘어서지 못하는 국가 균형 발전은 공염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기반시설 및 산업이 미진한 지역에 더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 아닌가.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
박재영 광주전남연구원장은 ‘과거 불균형 정책을 넘어서지 못하는 국가 균형 발전은 공염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기반시설 및 산업이 미진한 지역에 더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 아닌가.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