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띠 해에 들어보는 소 이야기
2021년 02월 18일(목) 04:00
동요 ‘송아지’에 나오는 얼룩소는 당연히 젖소일 것이다. 흰 바탕에 검은 점이 있는 홀스타인 젖소. 별다른 의심 없이 그렇게 생각해 온 세월이 길었다. 그게 우리 재래종 칡소라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후였다. 그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온몸에 칡덩굴 같은 어룽어룽한 무늬가 있는 칡소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얼룩소를 젖소로 지레짐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정지용의 ‘향수’(鄕愁)를 들으면서도 별다른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 한데 나중에 의문이 생겼다. 우리가 아는 황소에는 얼룩무늬가 없는데 시인은 어찌해서 ‘얼룩빼기 황소’라 했을까? ‘황소’라는 낱말에 그 비밀의 답이 있다. 그건 차차 설명하기로 하고. 우선 황소라 하면 흔히 누르 ‘황’(黃)을 연상하지만 아니다. 여기서의 황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누렁소가 아니라 역시 칡소일 가능성이 많다.

황소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한(大)+쇼(牛)의 구조로 ‘한 소’가 변해 ‘황소’가 되었다. 그러니 한마디로 누렁소가 아니라 ‘큰 소’다. 황새도 마찬가지다. 한(大)+새(鳥)에서 비롯됐으니 역시 ‘큰 새’라는 의미다. ‘크다’라는 뜻의 ‘한’이 붙은 땅이름도 쌔고 쌨다. 대표적으로 대전(大田)을 들 수 있겠다. 이는 ‘한밭’(큰 밭, 즉 넓은 들판)에서 비롯된 한자 지명이다. 원래는 ‘한재골’(큰 재가 있는 마을)이라 했던 담양의 대치리(大峙里)나 강남에 있는 대치동(大峙洞)도 마찬가지다.



칡소 사라지고 누렁소만 남아



이제 황소가 꼭 누렁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확연해졌다. 만약에 황소가 누렁소라면 ‘얼룩빼기 황소’는 ‘형용모순’(形容矛盾: 형용하는 말이 형용을 받는 말과 모순되는 일. 가령 ‘둥근 사각형’ 같은 경우)이 되고 만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기르던 황소에는 ‘누렁이’도 ‘검둥이’도 ‘얼룩이’도 있었다고 한다. 이중 ‘검정소’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황희 정승의 일화에도 나온다.

시골에서 한 농부가 소 두 마리를 데리고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마침 황희 정승이 그곳을 지나가다 농부에게 “어느 소가 더 일을 잘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농부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누렁이는 일도 잘하고 말도 잘 듣는데 검정소는 꾀가 많아 다루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라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여긴 황 정승이 “여보시오. 뭘 그런 걸 다 귀엣말로 합니까?” 하니 농부가 말하기를 “저들 짐승들도 일을 못한다고 하면 듣고 싫어한답니다” 했더란다.

우리나라에 다양한 색깔의 소가 있었다는 사실은 오래된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조선시대 신윤복과 김홍도의 우경도(牛耕圖)에 황소·흑소·칡소가 보인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도 이들 소가 여물을 먹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다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지금은 황색을 제외한 다른 색 한우는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소 그림을 즐겨 그렸던 화가 이중섭은 시작(詩作)에도 소질이 있었던지 ‘소의 말’이라는 시(詩)를 남겼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그는 1951년 제주도 피란 시절 이 시를 단칸방 벽에 붙여 놓았다는데…. 당시 이를 본 조카가 “삼촌, 시도 써요?”하고 묻자 화가는 “그냥 소가 말한 걸 옮겨 적었지”라고 답했다. 다시 조카가 “소가 조선말을 참 잘하네요” 하니까 그는 “조선의 소니까” 하며 함께 웃었다고 한다.

소는 순박·근면·성실의 상징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동시 ‘송아지’를 쓴 시인 박목월도 ‘황소 예찬’이라는 시를 남겼다. “슬기롭고 부지런한 황소여/ 산을 옮길 힘을 가졌으나/ 어린 아기처럼 유순하고/ 어떤 어려움도/ 성실 근면으로 이겨 내는”

엊그제 설을 쇠었으니 이제 비로소 신축년(辛丑年) 소띠 해가 시작됐다. 물론 사람들은 지난 1월(양력) 정초부터 이미 ‘흰 소의 해’라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신축년의 신(辛)은 오행상 금(金)이며 색은 흰색(白)이라면서. 하지만 옛사람들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황금돼지 해’니 ‘백말띠’니 하는 말은 일본에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열두 띠에다가 오색(五色)을 돌아가며 덧칠하는 것은 상술에서 비롯된 속설이다.”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박 교수는 또 이렇게 말한다. “오행의 색은 흑(黑)·백(白)·적(赤)·청(靑)·황(黃)인데 ‘파란 호랑이의 해’나 ‘빨간 양의 해’가 되면 또 어떤 요설로 포장할지 궁금하다.”



올 한 해도 빈 집에 소 들어오듯



아무튼 올해는 소띠 해. 한데 소는 어찌해서 12지지(地支)의 두 번째 자리에 놓인 것일까. 이에 관해서는 음양설을 비롯해서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중 널리 알려진 것이 쟁선설(爭先說)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옛날 하늘의 대왕이 정월 초하루 천상의 문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동물부터 높은 지위를 주기로 하고 달리기 시합을 시켰다. 다른 동물에 비해 느린 소는 하루 전 그믐날 밤길을 나섰다. 한데 이를 눈치챈 쥐가 소 등에 올라탔다가 마지막에 뛰어내려 제일 먼저 도착했다. 소는 당연히 두 번째가 되었다. 쥐의 영리함과 소의 성실함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열두 동물의 순서에 대한 의문은 지금뿐만 아니라 남송(南宋) 시대부터 제기되고 논란이 됐다고 한다. 어찌 됐든 십이지지는 원래 동물과 상관이 없었으며 고대 중국에서 초목의 성장을 나타냈다는 설이 유력하다. 예를 들면 ‘자’(子)라는 한자는 쥐가 아닌 식물의 씨앗을 의미하며 그래서 맨 처음 나온다는 것이다.

한편 불교에서는 소를 깨달음의 상징으로 본다.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을 소 찾는 일에 비유하는 그림이 사찰 벽화에 많이 남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십우도(十牛圖) 또는 심우도(尋牛圖)라 불린다.

올해가 소의 해이다 보니 소와 관련된 사자성어도 자주 거론된다. 그중 하나가 ‘호시우행’(虎視牛行)이다. ‘호랑이처럼 멀리 보고 소처럼 신중하게 행동하라’라는 좋은 뜻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생각난다. 마구 치고 나가는 이재명 지사에 비해 그는 지나치게 신중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지지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도 혹시 그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소띠 해를 맞아 소 이야기가 꽤나 길었다. 오늘도 우수마발(소의 오줌과 말의 똥, )처럼 보잘것없는 이내 글을 소의 인내심으로 읽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올해는 코로나가 어서 빨리 물러나고, ‘빈집에 소 들어오듯이’ 늘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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