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고-윤현석 정치부 부장] 방직공장
2021년 02월 18일(목) 00:00 가가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으로 영국에서 방적·방직·면직 관련 기계가 속속 개발된 이후 누구나 저렴하게 의류를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산업혁명은 섬유산업으로부터 시작됐다.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영국의 경제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사후 1884년 출간된 강의 모음집 ‘산업혁명사’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됐다. 산업혁명에 성공한 순서대로 국력의 차이도 커졌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이뤘다. 1870년대 초부터 식산흥업(殖産興業) 정책을 펴고, 1880년대 후반 민간자본에 의한 대규모 섬유업체를 설립하는 등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국력을 키우고 우리나라를 강제병합한 일제가 눈여겨본 것은 전남이었다. 이미 1904년 목포 고하도에서 미국 육지면을 시험 재배하는 데 성공한 일제는 본토에 있는 섬유업체의 원료를 대기 위해 온난한 기후의 전남을 목화와 누에고치의 생산지로 지목한 것이다.
일제가 양동 광주천변에 최초로 제사공장을 세운 것은 본토보다 40년 정도 늦은 1926년 5월이다. 착취를 위한 강제적인 산업혁명인 셈이다. 일본면화주식회사는 당시 산지와 가깝고, 노동력이 풍부하며, 교통 여건이 뛰어난 광주를 선택했다. 이후 1934년 일본 고베의 종연방적이 지금의 임동 인근 5만 평의 부지에 지은 공장이 지금의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이다. 이들 공장은 종업원 수만 2500여 명에 달할 정도였으며, 광주 전체 생산액의 절반을 담당했다. 여공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싼 값에 원료를 강탈해 일제의 경제를 뒷받침했던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이들 공장은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핵심 시설이었으나 이제는 새로운 역할과 기능을 해야 할 시점이 됐다. 하지만 사유지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곳을 높은 수익이 남는 아파트로 개발하려는 시도가 계속될 것이다. 일제가 주도했지만 우리나라 산업혁명의 역사가 묻어 있고, 87년여 세월 동안 축적된 매력적인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을 텐데 말이다. 시민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주에 몇 개 남지 않은 역사적인 공간을 싹 지워 버리고 또 후회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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