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좋은 비유와 죽은 비유에 대하여
2021년 02월 15일(월) 09:00
타인에 대한 실수는 말실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말실수는 대체로 비유가 잘못된 것에서 비롯된다. 비유는 설명하려는 것을 정확하고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 다른 것에 빗대어 말하는 기법이다. 비유의 사용은 인간에게만 있는 특별한 능력이다. 또한, 대화의 즐거움을 높이는 언어유희다. 그럼에도 누구나 특별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빗대서 표현하고 설명할 줄 알며 비유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성격이 불같다고 하거나 마음이 바다와 같다고 말하는데 상대방은 무슨 말인지 쉽게 알아듣는다.

구구한 설명 없이도 더 확실하게 의미하는 바를 표현하면서 우리 사회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비유를 들어 보자면 흙수저나 금수저 등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이 절묘한 비유에 단번에 공감하며, 자신은 어떤 수저인지를 생각해 볼 것이다. 이런 뜻에서 보면 많은 단어를 낭비하지 않아도 좋으니 비유는 언어의 경제적 측면에서도 유용하다. 대표적인 비유 방법은 직유와 은유이다. 직유는 ‘마치 노예처럼’ 또는 ‘황제 같은 태도’ 등의 표현이고 ‘마음의 정원’이나 ‘ 인생의 황혼’과 같은 방법은 은유다. 그렇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에 아무것이나 되는 대로 빗대어 연결한다 해서 좋은 비유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비유의 수사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부터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수사학’에서 비유하는 능력이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는 결정적인 조건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언어 체계와 인간의 언어 사용 능력에 내재된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곧 비유법이다. 비유를 통해서 더 쉽게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어서 설득되기도 쉽다는 것이다. 말귀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좋은 비유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즘에는 명색이 비유인데 그 저급함이 너무나 심해서 말귀를 의심할 정도다. 비유의 생명력은 빗대기의 예리함과 격조 있는 신선함과 유쾌함인데, 이러한 생명력을 잃었을 때 ‘죽은 비유’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비유는 상한 음식과 같다. 너무나 오래 사용하고 뻔해서 신선도가 떨어졌거나 오래전에 유효기간이 끝나서 듣는 순간 혐오감을 유발한다. 또는 의도가 너무 앞선 나머지 품위 없이 비뚤어지기만 한 빗대기는 추하게 보일 뿐이다.

최근의 죽은 비유는 어느 정치인이 말한 ‘조선 시대의 후궁’ 운운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이든, 입장의 차이가 어떠하든, 이 안일하고 고민 없는 구태의연함이라니! 아니면 혹시라도 고도의 치밀함에서 나온 ‘미친 척하고 엿 목판에 엎어지기’일까? 그 어느 쪽이든 비유를 위장한 막말은 정신의 게으름과 무례한 오만을 한껏 보여 줄 따름이다.

반면에 좋은 비유는 서로 달리 보이는 두 대상 사이의 유사성을 통해서 새로운 통찰을 드러내는 경우다. 이미 익숙한 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관점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창조적이다. 그래서 좋은 비유의 능력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사람에게서 배울 수 없는 것’이며 ‘천재의 징표’라고 말한다. 사물의 유사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은 기계적 사고나 습관의 시선 대신 부단한 연마로써 도달하는 정신의 성취다. 이런 창조적 비유를 공공의 영역에서 기대하는 것은 여전히 때 이른 언감생심의 일인가!

좋은 비유는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처럼 마음속에 들어와 터를 잡는다. 이런 이유에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비유의 언어부터 새로워져야 할 일이다. 왜 모르는 것일까? 날카롭지만 우아한 비유의 미학을 모른 채 정치적 계산과 의도만 앞세우는 언사 뒤에 남겨지는 것은 외설스러운, 너무나 외설스러운 모멸감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비루할 대로 비루해진 ‘죽은 비유의 정치’를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을.

독일의 시인 횔덜린은 우리가 잃어버린 신성의 품격과 이로 인한 언어의 고통을 이렇게 시로 남겼다. “우리는 하나의 징후다. 더는 아무 의미도 더는 고뇌도 아니다. 우리는 거의 잃어버렸다. 낯선 땅에서 언어를.” 의미도 고뇌도 없는 곳에서 시대의 징후로 살아가는 우리가 잃은 것은 서로를 연결하는 언어이며, 그렇기에 낯선 곳의 삶이라는 이 시적 고백이 오래 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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