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와 불안의 시대
2020년 12월 17일(목) 23:50 가가
낙엽이 떨어져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덧 강추위가 시작돼 겨울의 한 중심에 와 있다. 갑작스럽게 닥친 추위와 함께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그만큼 염려하는 마음이 커졌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아 보려고 노력하지만 뜻하는 바대로 되지는 않는 것이 인생이다. 살아 있는 것은 염려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간은 염려와 떨어져 살 수 없다. 염려는 불안에서 오는 감정으로 실존주의 철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불안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고 보았다. 자신을 무엇이라고 규정할 근거도 없고, 그 무엇으로도 언제 어떻게 변화될 줄 모르기 때문에 인간은 불안한 존재라는 것이다.
불안의 두 가지 원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불안 속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으나 많은 사람들이 불안 가운데 염려한다. 때로 이런 염려는 단지 염려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두려움에 이르게 하며, 심지어는 절망으로 이끈다. 인간의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모든 아름다웠던 것들이 빛을 잃게 되고, 자신의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된다.
사람의 마음에 염려가 시작되는 것은 자신이 의존하는 대상에 문제가 생겼을 때, 즉 믿었던 것이 믿을 수 없게 되었을 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의존의 대상은 당연히 물질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물질로 조달한다. 따라서 물질이 없으면 세상에서 생존할 수도, 즐겁게 살아갈 수도 없다고 생각하고 미래의 불안을 대비하기 위해서 물질을 쌓아 비축해 두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이야 말로 가장 유효한 힘이고, 자신의 뜻대로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물질을 최고의 의지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이 물질에 집착할 때 좋았던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건강했던 몸에 병이 들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마음마저 사라져 결국 불안이 더욱 증대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육체를 위해 먹고 입고 마시는 것을 염려하지 말라‘(마 6:25)고 가르친다. 재물을 통해 염려를 해결하려는 마음은 하나님보다 물질을 의지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많은 물질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만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재물이 모든 대비책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지나친 염려로 물질을 욕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전적으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면 그분이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작은 불안도 크게 염려하게 되고, 물질에 대한 집착은 증가한다. 성경은 염려를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사랑을 누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지 못한 상태일 때 염려는 특별한 중압감으로 사람의 마음을 지배해 버린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더 나은 삶으로 초청하신다. 사랑할 때, 우리는 오감을 통해 알게 된다. 나뭇잎, 바람, 바다 그리고 햇빛, 모든 자연 속에 가득한 사랑의 빛은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는 염려를 몰아낸다.
팬데믹의 현실을 운명처럼 여겨 굴복하면 노예처럼 살게 될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같아 진정한 삶이 아니다. 인간의 가장 큰 의무는 주어진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다. 현실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여겨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펼쳐질 것을 기대하며 자신의 현재의 삶을 직면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은 익숙한 인생의 길에서 풀쩍 뛰어오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염려에 익숙한 인생의 사이클에서 박차고 나와야 한다. 나의 두 발이 딛고 서 있는 염려와 불안과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두려운 것일수록 친구가 되면 힘이 된다. 이제 코로나와 같은 강력한 환경의 충격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새롭게 펼쳐질 삶을 기대하자.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육체를 위해 먹고 입고 마시는 것을 염려하지 말라‘(마 6:25)고 가르친다. 재물을 통해 염려를 해결하려는 마음은 하나님보다 물질을 의지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많은 물질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만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재물이 모든 대비책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지나친 염려로 물질을 욕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전적으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면 그분이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작은 불안도 크게 염려하게 되고, 물질에 대한 집착은 증가한다. 성경은 염려를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사랑을 누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지 못한 상태일 때 염려는 특별한 중압감으로 사람의 마음을 지배해 버린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더 나은 삶으로 초청하신다. 사랑할 때, 우리는 오감을 통해 알게 된다. 나뭇잎, 바람, 바다 그리고 햇빛, 모든 자연 속에 가득한 사랑의 빛은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는 염려를 몰아낸다.
팬데믹의 현실을 운명처럼 여겨 굴복하면 노예처럼 살게 될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같아 진정한 삶이 아니다. 인간의 가장 큰 의무는 주어진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다. 현실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여겨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펼쳐질 것을 기대하며 자신의 현재의 삶을 직면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은 익숙한 인생의 길에서 풀쩍 뛰어오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염려에 익숙한 인생의 사이클에서 박차고 나와야 한다. 나의 두 발이 딛고 서 있는 염려와 불안과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두려운 것일수록 친구가 되면 힘이 된다. 이제 코로나와 같은 강력한 환경의 충격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새롭게 펼쳐질 삶을 기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