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작지 않다
2020년 12월 11일(금) 06:00 가가
믿음에 관련된 복음서의 대표적인 비유는 ‘겨자씨’ 이야기다. 모든 일의 시작은 크거나 원대하지 않고 ‘겨자씨’처럼 가장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겨자씨’는 작아서 의미 없어 보이지만 성장한다는 가능성이 있기에 작다고 할 수 없다. 그 작은 씨앗은 그 시작에 있어 미약할지 모르지만, 싹이 트면서부터 커다란 변화의 가능성과 함께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래서 작은 것을 소홀히 대해서는 안되며, 작은 것에서 얻어지는 소중한 체험들을 결코 무시해선 안 된다. 작지만 그 안에서 소중함을 체험한 이들은 자신의 일상에서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본질을 자신의 삶에서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만일에 그 씨앗이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자란다면 어떤 변화와 힘이 드러날 것인가? 그 반대로 그 씨앗이 불신과 절망과 미움 안에서 자란다면 어떻겠는가?
6년 동안 남미 칠레에서 선교사로 살았던 필자는 소중한 체험들 중에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작은 김치 한 조각의 체험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소중한 일화 중 하나다. 처음 선교했던 곳은 칠레 남쪽 도시인 오소르노(Osorno) 교구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1000㎞ 떨어진 지방 도시였다. 한국 사람이라고는 두 명의 사제뿐이었다. 가끔 수도 산티아고에서 한인 신자들이 멀리 사는 두 사제를 위해 김치를 보내 주는데, 보물단지 마냥 아껴서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느 날 유통 기한이 지난 라면을 끓이고 냉장고에 있는 김치를 꺼내 왔다. 김치를 먹으려고 반찬통을 여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남아 있는 김치는 겨우 작은 조각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살았던 신부님이 대충 젓가락으로 작은 조각의 김치를 자르려고 할 때, 나는 그 신부님을 제지하고 얼른 내 방으로 가서 책상 위에 놓여 있던 10㎝ 자를 가지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10㎝ 자를 작은 조각 김치에 대며 정확하게 이등분하여 나누어 먹었다. 아주 작은 조각의 김치였지만, 나와 다른 신부님은 웃으면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먹었던 유통 기한 지난 라면과 작은 조각의 김치가 정말 맛있었다. 칠레를 떠난 지 이제 4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공동 사제관에서 당연하면서도 풍성하게 차려 나오는 김치를 보고 먹을 때마다 칠레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작고 소박한 것, 그리고 이것을 나누는 것에 행복이 있다. 그런데 작은 것도 나누지 못하면서 나눔은 큰 것을, 드러날 수 있는 것을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결국 자기 것은 어떤 것도 나누고 싶지 않으면서 ‘어렵겠다’ ‘불쌍하다’ ‘배고프겠다’ ‘춥겠다’ ‘왜 저러고 살아?’ 등의 비판과 평가를 쉽게 내려 버린다. 우리가 진심으로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평가를 내릴 수 있는가? 그러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파하는 이들, 각자 서로 다른 이유로 노숙하는 이들, 사회의 차가운 눈을 피해 홀로 외로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이들, 정말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큰 것일까? 혹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아주 작은 것이 아닐까?
복음서에 예수가 만나는 사람들은 사회 밑바닥에 있었던 가장 작은이들이었다. 예수는 당신이 만났던 약자들의 생명과 자유, 해방을 위해 그 시대에 대항하셨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시대와 예수가 사셨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주위에 노숙인, 이주 노동자, 미혼모, 독거노인,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과 같이 약자들이 많다. 코로나 상황에 추위까지 겹치면서 이들의 삶은 더 어렵고 험난한 곳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나눔의 실천은 물질에만 한정되지 않고 확장되어 나의 마음, 나의 시간, 나의 공간, 나의 사랑 등 보이지 않는 나눔도 존재한다. 그리고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나눔을 실천한다면 나눔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겨자씨’는 그렇게 작으면서 엄청난 성장과 영향을 준다.
우리가 나누려고 하는 것이 아무리 작아도 그것은 결코 작지 않다.
복음서에 예수가 만나는 사람들은 사회 밑바닥에 있었던 가장 작은이들이었다. 예수는 당신이 만났던 약자들의 생명과 자유, 해방을 위해 그 시대에 대항하셨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시대와 예수가 사셨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주위에 노숙인, 이주 노동자, 미혼모, 독거노인,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과 같이 약자들이 많다. 코로나 상황에 추위까지 겹치면서 이들의 삶은 더 어렵고 험난한 곳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나눔의 실천은 물질에만 한정되지 않고 확장되어 나의 마음, 나의 시간, 나의 공간, 나의 사랑 등 보이지 않는 나눔도 존재한다. 그리고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나눔을 실천한다면 나눔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겨자씨’는 그렇게 작으면서 엄청난 성장과 영향을 준다.
우리가 나누려고 하는 것이 아무리 작아도 그것은 결코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