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과 소멸 속에 드리워진 도시 예술 향연
2020년 12월 05일(토) 15:00
두번째 도시, 두번째 예술
노명우 지음

소피아 성당의 남서쪽 나르텍스의 모자이크. 왼쪽은 소피아성당을 성모에게 건네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오른쪽은 콘스탄티노플을 성모에게 건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실상 전 세계가 봉쇄된 상태다. 국내는 물론 국외 여행을 간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그러나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사회학자 노명우는 도시의 심층에 숨겨진 예술에 주목한다. 독일 유학시절 현실 밖 예술세계가 그리울 때면 책을 싸들고 낯선 도시로 떠나곤 했다. 고국으로 돌아와 우리말로 글을 쓰고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는 도시를 찾아간다. 그동안 ‘세상물정의 사회학’, ‘인생 극장’과 같은 책을 펴냈으며, 현재는 서울 골목길에 작은 서점을 차려 책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북텐더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이번에 발간한 ‘두번째 도시, 두번째 예술’은 젊은 시절 첫번째 여행과 달리 시간의 지층을 파고들어간다. 마치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하듯 세계적 예술 도시 이면에 펼쳐진 예술의 사회사를 주목한다. ‘국적과 국경을 뛰어넘은 어느 사회학자의 예술편력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책은 쇠락과 소멸 속에 드리워진 경이로운 예술을 보여준다.

첫번째 행선지는 기원전 3만7천년의 프랑스 아르데슈 지방이다. 지난 1998년 12월 이곳에서 발견된 원시동굴(쇼베 동굴)에는 말, 코뿔소, 사자와 같은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한 모습과 암석 표면의 성질까지 고려한 작화 기법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곳을 방문했을 때, 저자는 인류 예술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에서 찾는 견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색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도시는 이스탄불이다. 이곳에서 저자는 신성과 구원의 추구로서의 예술의 본질을 생각한다. 맨 아래 지층에서 보여지는 것은 초기 기독교 예술세계다. 기독교를 최초로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도시이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아야 소피아 성당을 세운 곳이기도 하다.

피렌체는 천재들의 도시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보티첼리, 브루넬레스키 등 뛰어난 예술가들을 배출했다. 천재들의 예술영감이 현실에서 꽃피울 수 있었던 데는 후원자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피렌체 공화정을 대표했던 길드의 후원으로 다비드 상, 조반니 세례당의 청동문이 탄생했다. 메디치 가문은 막대한 부에 대한 평판을 희석하기 위해 예술에 투자했고 결과적으로 예술의 도시를 가꾸는데 기여했다.

파리 예술의 특징은 모더니티에 있다. 저자는 이를 현대성, 즉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끊임없이 대체하는 힘이라고 설명한다. 혁명 이후 자본주의 질서는 상품 미학의 세계로 전이됐다. 유리 천장에 대리석 벽이 이어지는 파사주를 발전시켰다는 견해다. 그러나 19세기 말에는 마네, 드가, 모네, 카유보트 등은 부르주아적 예술을 거부했다. 자신들만의 낙선전을 기획하면서 도시민의 일상을 그렸다. 저자는 이처럼 파리의 현대성 이면에 있는 예술가의 흔적을 주목한다. <북인더갭·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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