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주변·방언의 다른 이름 ‘아시아’ 재조명
2020년 11월 14일(토) 12:00 가가
어제 그곳 오늘 여기
김남일 지음
김남일 지음
“동아시아 주요 도시들은 저마다 다른 처지에서, 또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근대를 맞이했다. 가장 먼저 근대를 맞이한 것은 과거와 가장 명징한 단절을 선택한 도쿄였다. 가장 명징한 단절을 선택했기에 가장 먼저 근대를 맞이했는지도 몰랐다. 그때까지 존재조차 희미했던 천황이 ‘얼굴’을 지닌 현인신(現人神)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자, 과거는 일시에 무너져 내렸다. 사무라이는 칼을 놓았고, 중들은 절에서 쫓겨났다. 도쿄는 스스로 탈아입구(脫亞入毆)의 슬로건을 내세웠다. 동아시아의 다른 도시들은? 베이징과 서울과 하노이는 완강히 빗장을 걸어 잠갔다. 칼과 창 몇 자루와 자존심으로 군함과 대포를 상대하려 했다. 분투했고, 장렬했다. 결과는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처참한 능욕이었다. 강제로 당한 탈아입구.” (본문 중에서)
‘아시아문화네크워크’에서 활동하는 김남일 소설가는 아시아를 이렇게 정의한다. “소수, 주변, 방언의 다른 이름”이라고. 그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60%를 차지해도 늘 소수였고 늘 주변부였다. 더구나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자신들이 쓰는 언어는 늘 방언 취급을 당했다.
작가는 최근 아시아 이웃 도시를 근대 문학이라는 키워드로 조명한 책을 발간했다. ‘어제 그곳 오늘 여기’는 사이공과 하노이, 상하이, 도쿄, 타이베이, 오키나와, 서울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글 사이사이마다 루쉰, 나쓰메 소세키, 이광수, 앙드레 말로, 조지 오웰, 헤르만 헤세, 마그리트 뒤라스가 그린 아시아의 풍경들이 스며든다.
작가가 처음 외국에 나간 것은 1993년이었다.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여러 나라를 가곤 했는데 첫 번째 일본여행 이후 수시로 국제선을 타고 밖으로 나갔다. 여러 번의 출타로 작가의 의식 속에는 ‘거기, 아시아가 있었다’는 선언적인 가치가 자리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번 책은 기행문이라는 카테고리로 묶기에는 스펙트럼이 넓다. 한 편의 독후감일 수도, 몽상의 기록일 수도 있다. 작가 앞에 놓인 지난 시절의 여정과 그것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사진들은 아시아의 실체를 담보한다.
작가가 방문했던 도시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곳은 오키나와이다. 비극의 정서가 남아 있는, 일찍이 일본 본섬과는 다른 문화와 풍속을 간직한 고장이다. ‘복속의 설움과 태평양전쟁의 상흔이 깊이 새겨진’ 터라, 일본은 결정적인 순간 오키나와를 버렸다는 것이다. 한때 군사기지로 전락했던 점, 더욱이 그곳에는 ‘기지촌’의 정서가 남아 있다.
타이베이에서는 일반적인 대만의 모습과는 다른 면을 본다. 대만의 근대화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통해 가속화됐다. 서양의 관습은 물론 문화예술 사조, 음악과 연극 등이 일본어로 전수되고 학습됐다는 견해다. 하지만 일본이 빠져나간 뒤 대만 현대사 비극인 2·28 사건이 일어났다. 본성인과 외성인의 갈등 등이 문화예술 저변에 깔리기 시작했다.
‘통일 베트남의 자존심’ 하노이는 지난해 북미 정상회담 무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세기 큰 전쟁을 세 번이나 끝냈다는 자부심이 ‘평화의 수도 하노이’라는 수식어로 빛을 발했다. 그러나 프랑스, 미국이 관통한 침탈의 흔적이 하노이, 사이공에 남아 있다. 통일이 될 때까지 베트남은 극악무도한 전쟁을 감당해야 했다.
저자는 말한다. 경계를 넘어 오갔던 아시아 여정은 어쩌면 관습의 산물이었는지 모른다고. 그러면서 “‘국가’에 하도 지친 나머지 어떻게든 ‘국가 바깥’으로 달아나려고만 했던 내 젊은 시절부터의 관습! 하지만 이제 나는 유목민이 되기 위해 반드시 몽골 초원을 가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되뇌인다.
<학고재·1만7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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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방문했던 도시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곳은 오키나와이다. 비극의 정서가 남아 있는, 일찍이 일본 본섬과는 다른 문화와 풍속을 간직한 고장이다. ‘복속의 설움과 태평양전쟁의 상흔이 깊이 새겨진’ 터라, 일본은 결정적인 순간 오키나와를 버렸다는 것이다. 한때 군사기지로 전락했던 점, 더욱이 그곳에는 ‘기지촌’의 정서가 남아 있다.
타이베이에서는 일반적인 대만의 모습과는 다른 면을 본다. 대만의 근대화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통해 가속화됐다. 서양의 관습은 물론 문화예술 사조, 음악과 연극 등이 일본어로 전수되고 학습됐다는 견해다. 하지만 일본이 빠져나간 뒤 대만 현대사 비극인 2·28 사건이 일어났다. 본성인과 외성인의 갈등 등이 문화예술 저변에 깔리기 시작했다.
‘통일 베트남의 자존심’ 하노이는 지난해 북미 정상회담 무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세기 큰 전쟁을 세 번이나 끝냈다는 자부심이 ‘평화의 수도 하노이’라는 수식어로 빛을 발했다. 그러나 프랑스, 미국이 관통한 침탈의 흔적이 하노이, 사이공에 남아 있다. 통일이 될 때까지 베트남은 극악무도한 전쟁을 감당해야 했다.
저자는 말한다. 경계를 넘어 오갔던 아시아 여정은 어쩌면 관습의 산물이었는지 모른다고. 그러면서 “‘국가’에 하도 지친 나머지 어떻게든 ‘국가 바깥’으로 달아나려고만 했던 내 젊은 시절부터의 관습! 하지만 이제 나는 유목민이 되기 위해 반드시 몽골 초원을 가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되뇌인다.
<학고재·1만7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