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비 43명의 파란만장한 삶
2020년 10월 30일(금) 10:00 가가
왕비로 산다는 것
신병주 지음
신병주 지음
“단종이 노산군이 되면서 정순왕후 역시 부인으로 강등되었고, 동대문 밖에서 거처하며 외롭고 고달픈 삶을 이어 갔다. 현재 종로구 창신동에는 ‘자지동천’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 밑에 샘물의 흔적이 보인다. ‘자지동천’은 ‘자줏빛 풀이 넘치는 샘물’이란 뜻으로, 흰 옷감을 이곳에 넣으면 자줏빛으로 염색이 되었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정순왕후가 생계를 위해 이곳에서 옷감을 물들이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중략) 세종 때 출생한 그녀는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등 무려 8명의 왕과 함께 한세상을 보낸 셈이다. 그녀의 무덤은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 집안 종중의 산이 있는 현재의 남양주시 진건읍에 대군부인의 묘로 조성되었다.”(본문 중에서)
역사를 읽어내는 키워드는 많다. 인물일 수 있고, 사회일 수도 있으며, 문화일 수도 있다. 인물 가운데서도 권력자, 신하, 백성 등 다양한 계층이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왕이나 재상, 또는 이슈가 되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화려하기보다 살얼음판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왕비의 이야기가 역사를 들여다보는 창이 될 수 있다. 왕비는 권력과 부가 보장된 지위라기보다 정치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입장에 처한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다양한 변수들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왕비를 키워드로 조선의 역사를 조명한 책이 발간됐다. ‘조선시대 최고 전문가’인 신병주 건국대 교수가 펴낸 ‘왕비로 산다는 것’은 가문과 왕실 사이에서 갈등을 감당해야 했던 왕비의 운명에 초점을 맞췄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50명의 인물 중 공식적인 왕비는 43명이다. 나머지 7명은 연산군과 광해군을 따라 폐비가 된 폐비 신씨와 폐비 유씨,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비로 추숭되었다가 그가 폐위되면서 13년 만에 왕비의 자리에서 내려온 공성왕후 등이 있다. 또한 사약을 받은 조선의 첫 왕비이자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소현세자 죽음으로 왕비가 되지 못한 소현세자빈 강씨 등이다.
이는 왕비들이 가문과 왕실의 권력 사이에서 왕실을 둘러싼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신변의 변화를 겪었음을 보여준다.
먼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힘이 됐던 신덕왕후를 비롯해 태종 이방원을 왕위에 오르게 만든 원경왕후 이야기가 나온다.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은 신권의 중심에 섰지만, 왕권 강화에 역점을 뒀던 태종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단종을 몰아내고 집권한 세조 뒤에는 여걸형 왕비 정희왕후가 있었다. 계유정난으로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날, 그에게 갑옷을 입혀준 대찬 여성이었다. 훗날 성종을 대신해 조선 최초 수렴청정을 하기도 했다. 인수대비로 알려진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는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던 여성이었다. ‘내훈’이라는 최초의 한글 여성 교육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폐비 신씨는 연산군의 왕비라는 이유로 폐위되었다. 신씨 조카로 중종의 왕비인 단경왕후는 부친 신수근이 연산군 최측근이라는 이유로 폐위의 운명을 맞는다. 중종의 다음 왕비가 된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을 대신해 수렴첨정을 한다. 그리고 20년간 동생 윤원형, 정난정 등과 함께 외척정치를 이어간다.
저자는 궁궐을 찾아보면 외견상 화려해 보이지만 이면에는 왕비들의 파란만장한 역사 또한 드리워져 있다고 강조한다.
<매일경제신문사·1만9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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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때인 1483년 대왕대비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확장한 창경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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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왕비들이 가문과 왕실의 권력 사이에서 왕실을 둘러싼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신변의 변화를 겪었음을 보여준다.
먼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힘이 됐던 신덕왕후를 비롯해 태종 이방원을 왕위에 오르게 만든 원경왕후 이야기가 나온다.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은 신권의 중심에 섰지만, 왕권 강화에 역점을 뒀던 태종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단종을 몰아내고 집권한 세조 뒤에는 여걸형 왕비 정희왕후가 있었다. 계유정난으로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날, 그에게 갑옷을 입혀준 대찬 여성이었다. 훗날 성종을 대신해 조선 최초 수렴청정을 하기도 했다. 인수대비로 알려진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는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던 여성이었다. ‘내훈’이라는 최초의 한글 여성 교육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폐비 신씨는 연산군의 왕비라는 이유로 폐위되었다. 신씨 조카로 중종의 왕비인 단경왕후는 부친 신수근이 연산군 최측근이라는 이유로 폐위의 운명을 맞는다. 중종의 다음 왕비가 된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을 대신해 수렴첨정을 한다. 그리고 20년간 동생 윤원형, 정난정 등과 함께 외척정치를 이어간다.
저자는 궁궐을 찾아보면 외견상 화려해 보이지만 이면에는 왕비들의 파란만장한 역사 또한 드리워져 있다고 강조한다.
<매일경제신문사·1만9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