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품격의 왜소함에 대하여
2020년 08월 03일(월) 00:00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누군가의 품격을 말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자칫하면 그야말로 품격 없는 짓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언행을 듣고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품격을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품격은 여전히 중요한 덕목이다. 맥락을 끊어 버리고 말꼬리나 잡는 유희를, 미몽에 빠진 몽매한 사람들을 일깨우는 계몽이나 시급한 공익사업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품격의 경박함은 모두에게 파급효과를 낳는다. 특히 공적인 언행일 때 더욱 그러하다.

한 소설 관련 단체는 흔히 쓰이는 ‘소설’이라는 표현의 쓰임새가 진지하지 못하며 이는 소설과 거짓말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는 ‘전문성’ 높은 지적과 훈계를 하면서 상처받은 자긍심을 호소한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법을 지키기 위해서 몸싸움을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들의 품격을 논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애초부터 없는 품격을 무슨 재주로 논한단 말인가.

차라리 트로이 전쟁에서 왕위 계승자로서 트로이군의 총사령관을 맡았던 헥토르를 보자. 헥토르의 동생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해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헥토르는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의 운명을 결정하는 결투를 해야만 했다. 상대는 그리스의 가장 뛰어난 영웅 아킬레우스였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명성을 잘 알기에 최고의 찬사와 경의를 표하면서 서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제안을 한 가지 한다.

승패가 가려지면 “나는 그대에게 모욕을 가하지 않고 그대의 이름난 투구를 벗긴 다음 그대의 시신은 돌려줄 것이니 그대도 그렇게 하라.” 헥토르는 전투의 승리자는 망자를 모욕하거나 조롱하지 말고 서로의 명예를 지켜 주자고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분노와 증오심에 찬 아킬레우스는 단번에 거절한다. 아킬레우스에게 헥토르와의 싸움은 복수이자, 원한을 푸는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써 따지자면 아킬레우스가 자신의 투구를 친구에게 준 탓에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인줄 알고 친구를 죽였으니,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사실 자신에 대한 것이나 다름없다. 요즘 말로 자괴감이라고나 해야 할까.

헥토르는 고대 로마인들로부터 최고의 품격과 고귀함을 갖춘 인물로 여겨졌다. 자신보다는 모두를 생각했고, 이익을 위해서 비열과 야만을 자행하는 일은 없었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동생에게 있다고 비판한 사람도 헥토르다. 그는 ‘좋은 형님’이 아닌, 동생에게 잘못한 것을 바로잡으라고 야단을 치는 ‘매정한 형님’이었다.

반면에 아킬레우스는 최고의 명장이지만, 사적인 감정에 따라 문제를 결정하는 인물이다. 내 편에게는 한없이 너그럽지만 자신을 건드린 사람에게는 더없이 가혹하고 난폭한 영웅인 것이다. 그는 친구의 복수를 위해서 헥토르를 죽이고 주검을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며 모두의 앞에서 야만적인 모멸을 가한다.

쉽게 상처받는 자긍심과 자괴감은 너무 낮은 공격 자극점이 문제라고 한다. 누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즉각적으로 폭발한다는 의미다. 동물이 본능적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대며 비상 체제를 가동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전혀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과잉 반응을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늘 위험하며, 공격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애초부터 자긍심이 있었는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자긍심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활동 능력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이라고 스피노자는 말하지 않았던가. 이에 따르면, 자긍심은 누가 뭐라고 한다고 해서 쉽게 무너질 수 없다. 모두가 어려운 이 시기에 한쪽에서는 시대착오적 교양주의로 국민 계몽을 시도하는 속물스러움을, 다른 한쪽에서는 법을 위해서 기꺼이 법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자기모순에서 민망하기 짝이 없는 왜소함의 정점을 드러낸다.

정신의 왜소함을 늘 탄식했던 니체는 ‘사소한 것에 대해 가시 돋쳐 있는 것, 그것은 기껏 고슴도치에게나 필요한 지혜’라고 말했다. 아무 때나 날을 세우는 이유는 무기력과 정체된 정신의 반증이며, 자신이 섬기는 우상을 내세워 왜소함을 숨기려 한다는 의미다. 더 늦기 전에, 스스로 품격을 지키는 것이 곧 상처 난 자긍심을 회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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