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020년 04월 17일(금) 00:00 가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 12장 24절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 내느냐, 살아 내지 못하느냐에 따라 참된 신앙인인가 아니면 거짓된 신앙인인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부활에 대한 믿음과 그 부활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부활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죽음이 있어야 한다. 자신 스스로를 희생해야 가능한 삶이 부활이다. 밀알 하나의 죽음, 곧 밀알이 땅에서 자신을 썩혀야만 싹이 나고 꽃이 피게 되어 많은 열매까지 맺게 된다.
예수가 말씀하신 죽음은 당신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다. 예수의 모든 것, 특히 죽음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하고 있다. 예수는 당신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죄의 죽음으로부터 구원되기를 바라셨다. 곧 예수의 죽음은 인간 생애 여정에 있어서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역설적이기도 하지만, 우리 인간의 삶이 죽어야 살 수 있다는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을 희생해 다른 사람을 살린다는 것, 이것을 예수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고 말씀하신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사명을 실천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 신앙인이며 성직자로 사는 필자는 예수께서 사셨던, 벗을 위한 죽음이 주는 생명의 의미를 알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도 이 의미를 알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을 삶으로 살아 내려 하는데 쉽지가 않다. 왜 타인의 삶을 위해 나를 희생하지 못하는가? 왜 타인을 위해 죽으려고 하지 않는가? 왜 나의 것을 그토록 내놓지 못하는가? 우리 각자 스스로는 이런 의문과 반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의문이 없으면 무지하고, 반성이 없으면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문과 반성은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하고 해결점을 찾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 변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옳다고 생각하며 마음 두었던 가치들이 허황된 것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며 게걸스런 돼지처럼 탐욕을 부려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재앙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엿봤다. 확진자가 많았던 대구로 달려간 수많은 의료인들과 소방대원들, 몸을 아끼지 않고 코로나19 확진 환자들을 치료했던 간호장교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소중함을 되찾았다. 이들의 희생이 사람을 살렸고, 이들의 노고가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소중한 것을 회복시켰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을 아끼지 않고 던질 수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의료진과 소방대원들은 의무감 때문에 달려온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아프기 때문에 달려 왔다. 사람의 생명이 무엇보다 소중하기에 달려온 것이다. 결국 우리 생명의 유지는 누군가의 희생, 곧 죽음을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수 부활 시기를 보내는 가톨릭교회는 모든 미사와 모임을 중단하고 있다. 코로나19 종식에 대한 정부의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다. 예수가 죽음을 이겨 부활하심을 모두가 모여 기억하는 시기지만, 종교는 사회와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아름다운 메시지를 나누고 싶다. 부활의 의미와 지금 우리가 겪는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를 깊게 생각해보자.
“강은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고,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으며, 태양은 스스로를 비추지 않고, 꽃은 자신을 위해 향기를 퍼트리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돕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인생은 당신이 행복할 때 좋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입니다.”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 변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옳다고 생각하며 마음 두었던 가치들이 허황된 것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며 게걸스런 돼지처럼 탐욕을 부려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재앙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엿봤다. 확진자가 많았던 대구로 달려간 수많은 의료인들과 소방대원들, 몸을 아끼지 않고 코로나19 확진 환자들을 치료했던 간호장교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소중함을 되찾았다. 이들의 희생이 사람을 살렸고, 이들의 노고가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소중한 것을 회복시켰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을 아끼지 않고 던질 수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의료진과 소방대원들은 의무감 때문에 달려온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아프기 때문에 달려 왔다. 사람의 생명이 무엇보다 소중하기에 달려온 것이다. 결국 우리 생명의 유지는 누군가의 희생, 곧 죽음을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수 부활 시기를 보내는 가톨릭교회는 모든 미사와 모임을 중단하고 있다. 코로나19 종식에 대한 정부의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다. 예수가 죽음을 이겨 부활하심을 모두가 모여 기억하는 시기지만, 종교는 사회와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아름다운 메시지를 나누고 싶다. 부활의 의미와 지금 우리가 겪는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를 깊게 생각해보자.
“강은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고,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으며, 태양은 스스로를 비추지 않고, 꽃은 자신을 위해 향기를 퍼트리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돕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인생은 당신이 행복할 때 좋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