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마음이면 좋겠다
2020년 03월 13일(금) 00:00

[김원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살아있는 것은 부드럽다. 죽는다는 것은 딱딱하게 굳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딱딱한 손보다는 부드러운 손이 더 많은 것을 느끼며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돌처럼 딱딱한 마음으로는 부드러운 봄바람을 느낄 수 없고, 조급한 마음으로는 어린 아이의 느린 걸음마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무엇으로 가득 찬 마음, 다급한 마음으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없으며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수도 허다하다.

한 사나이가 사막을 지나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 산들과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그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고 급기야는 비상용으로 가져온 물도 떨어진 지 오래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너무 지쳐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었을 때, 저 앞에 펌프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는 너무 기뻐 쏜살같이 뛰어가 펌프를 움직였으나 물이 나오지 않아 실망한 나머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런데 펌프 옆에 있는 작은 바위 밑에 물병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물이 들어 있었다. 사나이는 허겁지겁 뚜껑을 열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 물은 갈증을 해소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갈증이 심해진 사나이는 숨겨진 물이 더 없을까 하고 여기저기 뒤져 보았지만 물은 더 이상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펌프에 작은 깡통 하나가 달려 있고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펌프는 물을 뿜어낼 수 있는 완제품입니다. 지하에는 물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 펌프를 사용하려면 먼저 펌프를 물로 적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펌프를 시동할 만큼의 물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펌프 옆에 있는 흰 바위 밑을 들치면 물병이 있을 것입니다. 그 물은 겨우 펌프를 적실 수 있는 정도입니다. 먼저 4분의 1만 부어 안에 있는 가죽을 적시도록 하세요. 그 후 나머지 물을 조금씩 부으면서 힘 있게 펌프질을 하면 물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펌프를 다 쓴 후에는 전과 같이 다시 병에 물을 넣고 잘 봉한 뒤 처음 놓여 있던 바위 밑에 넣고 편지와 깡통도 다시 손잡이에 달아 놓으세요. 추신: 만일 목마르다고 병의 물을 먼저 마셔 버리면 당신은 물론 다음 여행자도 이 펌프를 사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편지를 다 읽은 사나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람이 다급할수록 마음을 잘 챙기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 순간 방심을 해버리기에 실수를 하고 실수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매순간 그럴 수는 없지만 기회가 왔을 때는 차분하게 대처하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박중빈 1891~1943)께서도 “온전(穩全)한 생각으로 취사(取捨)를 하라”고 하셨다. 여유란 모든 상대와 사물을 냉철하게 바라 볼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준다. 거기에서 바른 판단이 나오고, 바른 판단을 할 때 바른 취사를 하게 되고, 바른 취사를 하면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고 이런 마음의 소유자가 큰 일을 하는 것이다. 원불교 대종경(법문을 결집한 경전)에 소태산 대종사께서 제자들에게 인사를 받으신 후 “내가 오늘 여러 사람에게 인사를 받았으니 세속 사람들 같으면 음식이나 물건으로 답례를 하겠으나, 나는 돌아오는 난세를 무사히 살아갈 비결(秘決) 하나를 일러 줄 터인즉 보감을 삼으라” 하시고 선현(先賢)의 시 한편을 써 주셨다.

‘처세에는 유한 것이 제일 귀하고(處世柔爲貴) 강강함은 재앙의 근본이니라(剛强是禍基), 말하기는 어눌한 듯 조심히 하고(發言常欲訥), 일 당하면 바보인 듯 삼가 행하라(臨事當如痴), 급할수록 그 마음을 더욱 늦추고(急地尙思緩), 편안할 때 위태할 것 잊지 말아라(安時不忘危), 일생을 이 글대로 살아간다면(一生從此計), 그 사람이 참으로 대장부니라(眞個好男兒).’ 한 글이요, 그 글 끝에 한 귀를 더 쓰시니 ‘이대로 행하는 이는 늘 안락하리라(右知而行之者常安樂)’고 하셨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 무언가를 느낄 수 있고 온전한 생각으로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슬픔을 느껴서 불행한 것이 아니다. 느껴야 할 슬픔을 못 느끼는 것이 더 큰 불행일 것이다. 차가움을 느낄 수 있으면 따뜻함도 느낄 수 있다. 차가우면 차갑다고, 따뜻하면 따뜻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 내 존재의 온전함을 증명하는 크나큰 행복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아 새로운 시작, 이런 마음으로 일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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