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청 입지 DJ·YS가 결정? 정치적 고려 0.00001%도 없었다”
2020년 02월 24일(월) 00:00
[이건철 동신대 관광학과 교수]
1993년 도청이전 최종후보지 발표…전국 연구원 30명 참여
“‘정치적 결정’소문 사실이었다면 지금쯤 모두 알려졌을 것”
#. 신도청소재지 최종후보지를 선정함에 있어 어떠한 외압이나 장애 요인을 과감히 배제하여, 우리 도의 백년대계를 내다보고 도정을 책임지고 있는 공인의 입장에서 사심 없이 공명정대하게 선정하였음을 분명하게 말씀 드립니다. (2002년 전남도 발간, 도청이전백서)

1993년 12월 24일 안주섭 전남 부지사가 도의회에서 도청 이전 최종후보지 선정 결과를 발표한 뒤 전남도가 내놓은 ‘당부의 글’ 일부다. 당시 도청 이전지는 전문가 평가를 거쳐 객관적으로 선정됐으나 ‘정치적 결정’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팽배했고, 유치전에 나섰다가 실패한 시·군들 반발까지 맞물리면서 후폭풍 차단에 고심했던 전남도의 상황을 보여준다.

전남개발연구원장을 지낸 이건철(64·사진) 동신대 관광학과 교수는 지난 14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당시 신도청 입지 선정에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했다. 단언컨대 정치적 고려는 0.00001%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당시 도청 유치전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30년이 다 된 지금도 당시 입지가 정치적 판단으로 결정됐다고 믿는 이들이 상당하다. 설명해도 끝까지 믿지 않는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1993년 5월 13일 김영삼 대통령의 5·18민주화운동 특별담화 이후 전남도가 꾸린 ‘신도청소재지 적정 입지선정에 관한 연구 최종보고서 참여 연구진’에 참여했다. 당시 전남발전연구원 연구 3부장이었다. 객관성 유지를 위해 연구진은 서울지역 교수·연구원, 지역 대학 교수, 전남개발연구원 연구원 등 30명으로 꾸렸다.

입지 선정 결과 발표 후 목포 인접 시·군 7곳을 제외한 21개 시·군 결사반대하고 나섰다. 시중에선 야당 지도자 김대중과 대통령 김영삼이 입지를 결정했다는 말이 퍼졌다. 당시 목포지역 국회의원이 김홍일(DJ 장남)씨였다는 점이 소문을 키웠다.

이 교수는 “당시 김홍일 의원실 사람들이 ‘우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고 언론 오보와 갖가지 추측이 꼬리를 물며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며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다. 정치적 결단으로 신도청 입지가 결정됐다면 지금쯤 다 알려졌을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입지 선정이 객관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던 데는 유력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철저하게 중립을 지켰던 것도 하나의 배경이라고 전했다.

“이균범 당시 전남지사는 고향이 함평 천지였습니다. 함평은 유력후보지였지만 처음부터 제외시켰습니다. 이 지사가 ‘직을 걸고 공정하게 하겠다. 함평은 제외하라’고 연구위원과 기자들 앞에 공언했기 때문입니다.”

/김형호 기자 kh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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