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과 소멸의 변주곡이 울려퍼지는 습지 예찬
2019년 12월 06일(금) 04:50
습지주의자 김산하 지음
“생명과 죽음이 서로 용해되는, 섬세하고 풍요로우며 뿌옇고 불가해한, 이 모든 것과 그 이상인 습지. 습지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라코타 족의 언어로 물은 ‘므니’라고 합니다. 허나 원래 의미는 ‘살아 있는 것들의 느낌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어떤가요? 저와 습지와 연결되었나요?”(본문 중에서)



한국 최초 야생 영장류 학자인 김산하 박사는 습지를 이렇게 말한다. ‘생명과 소멸의 변주곡이 울려 퍼지는 곳’. 또한 그는 습지를 이렇게도 규정한다. 습하면서도 마르고 물이면서 뭍인 곳, 물과 흙이 빚어내는 역동의 세계라고.

김산하 박사가 펴낸 ‘습지주의자’는 픽션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습지를 조명한다. ‘자바긴팔원숭이의 먹이 찾기 전략’을 연구한 생태학자답게 책에는 생명의 서식지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습지라는 공간에 대한 감수성, 상상력은 인문학자 못지않은 풍부한 시각과 섬세함이 빛난다.

책은 생태학 관점에서 습지가 지닌 본질을 탐구하는 한편, 습지가 선사하는 충만한 감각들을 전달한다. 그로 인해 생태학은 자연이 스스로를 표현하게 해 주는 언어로 확장된다.

사실 현대사회에서 습지에 대한 평가는 일정 부분 폄하돼 있다. ‘노는 땅’ 내지는 ‘개발되기를 기다리는 땅’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지구 표면의 6%에 해당하며 10만 종에 달하는 생명의 서식지가 바로 그곳이다.

“물과 땅이라는 지구의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상호 이질적인 물질들이 마법처럼 공존하는 곳입니다.…… 두 세상의 경계이자 어엿한 하나의 독립 세계, 수분과 대지라는 가장 근본적인 생명의 가능성을 상징하고 의미하는 곳. 네, 그렇습니다. 습지가, 반쯤 잠긴 무대입니다.”

픽션이라는 형식에 따라 내용은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나라’는 인물이 영상 작품을 만드는 이야기가 ‘장’이라는 축으로, 또 하나는 ‘나’가 듣는 습지 팟캐스트 ‘반쯤 잠긴 무대’가 ‘무대’라는 축으로 교차 배치된다.

‘나’의 원래 직업은 영화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부업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에 환경단체로부터 영상 제작 의뢰를 받는다. 두꺼비와 개구리가 이용할 ‘생태통로’를 주제로 하는 홍보영상이다. 책은 도시인이자 창작자로서 나의 내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나의 시선을 통해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게 한다.

‘반쯤 잠긴 무대’의 주제는 습지다. 습지의 탄소 저장량은 미국이 4년간 배출하는 탄소의 총량에 맞먹는다. 질소를 고정하는 데다 홍수 피해까지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습지의 생성은 물과 흙이라는 근본적인 조건이 맞물린 결과다. 그러나 물과 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적잖이 왜곡돼 있다. 물에 젖는 것을 싫어할 뿐 아니라 흙탕물을 더럽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습지의 구성요소를 새롭게 살펴보고 생태적 감수성을 연습해보라고 권유한다. 물을 마시는 과정을 세밀하게 인지해보는 연습, 찰흙으로 만든 땅 모형에 물길을 만들어 습지 생성 원리를 생각해보는 연습 말이다.

그러다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습지는 우리 모두가 생명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에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내가 발견한 연결의 끈은 동료애 같은 것이었다. 비슷한 처지에서 비슷한 삶을 구가하는 운명 공동체. …… 이 연결의 끈을 여태 왜 몰랐을까? 이 마르고 단단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울리지 않게 피부 호흡으로 물을 찾아 살아가는 같은 처지인데.”

<사이언스북스·1만95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