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간이 운명처럼 맞서야 했던 고독과 아픔
2019년 08월 16일(금) 04:50
백범, 거대한 슬픔 - 김별아 지음
환국을 앞두고 상하이 공항에 도착한 임시정부 요원들. 김구선생을 중심으로 왼쪽이 김규식과 조완구, 오른편이 눈물을 훔치는 이시영 선생, 앞줄 가운데 하얀 셔츠를 입은 소년이 우당 이회영 선생 손자인 이종찬이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머리가 꼬리를 물고 도는 뱀과 같은 역사를 오늘 다시 쓰고 내일 또 새롭게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냐고 묻지 않으면 그 어리석은 반복과 순환을 이해할 방도가 없다.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알지 못하고서야 탈출을 시도할 수조차 없다. 역사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길을 찾을 수 없다. 그리하여 다시 질문한다. 왜, 대체 무엇 때문이냐고?”(작가의 말 중에서)



1945년 11월 23일, 중국 상해 강만 비행장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 요인들이 모였다.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과 취재진으로 떠들썩한 시간, 열다섯 명의 사람이 태극의 깃발이 나부끼는 속에서 미군 수송기에 오른다.

한국은 외부의 힘으로 ‘해방’됐지만 자체적인 투쟁으로 ‘광복’하지 못했기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한국의 공식 정부가 될 수 없었다. 울분을 삼키며 미군 군정을 받아야 한다는 서약서에 서명하고 올라탄 비행기, 임시 정부 수석 김구가 하염없이 기창 밖을 내다보며 지나온 세월을 회상한다.

독립 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백범 김구. 그의 위대한 업적 뒤에는 운명과 맞서야 했던 한 인간의 고독과 아픔이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자 백범 서거 70주년, 역사적 기록들 행간에 숨겨진 그의 인간적 면모를 그리는 소설이 출간됐다.

베스트셀러 ‘미실’의 작가 김별아가 펴낸 ‘백범, 거대한 슬픔’은 나라 잃은 설움을 딛고 선 자의 고독과 가숨에 맺힌 말들을 풀어낸다.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간 백범의 면모가 소설 곳곳에 드리워진다.

작가는 “한국 독립 투쟁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백범 김구의 생애를 쓰는 동안 나는 줄곧 묻고 또 물었다. 왜 그렇게 살고 왜 그렇게 죽어야 했냐고. 그에게 묻고, 내게 물었다”며 “오직 끝없는 질문 속에서만 그를 이해할 길을 찾을 수 있기에, 이미 안다고 믿었던 답들을 거듭 묻고 재차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작가는 ‘나라를 잃고 상갓집 개처럼 떠도는 우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프게 직시한다. 나라 잃은 설움을 딛고 선 자의 고독이자, 김별아가 소설로 형상화한 백범 김구의 가슴에 맺힌 말들이기도 하다.

소설은 해방을 맞아 조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백범의 회상 장면을 계기로 시작된다. 일본 육군 중위 쓰치다를 처단하며 시작된 ‘냉혹한 슬픔’은 아버지에 대한 ‘쓰라린 슬픔’과 약혼녀 여옥을 떠나보낸 ‘아련한 슬픔’으로 이어진다.

생과 사의 가혹한 경계에서 그는 ‘슬픈 밥’으로 수감 생활을 견딘다. 그러나 이마저도 잠시 아내를 잃는 ‘자욱한 슬픔’에 휩싸인다.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봉창, 윤봉길과의 동지애는 고독하고 아픈 슬픔으로 다가왔으며 일제의 지명 수배자가 돼 떠돌았던 시간은 ‘흐르는 슬픔’으로 그의 삶에 덧씌워진다. 그러나 어머니를 잃는 ‘거룩한 슬픔’이 다시 찾아오니, 백범의 생애는 온통 슬픔으로 점철된 생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질곡의 가운데서도 백범은 김창암에서 김창수, 김두호, 원종, 김두래, 백정선, 장진구, 김구로 여덟 번 이름을 바꾸며 살아야 했다. 피할 수 없었던 숱한 슬픔을 감내하며 결전의 그날을 기다리던 중 갑작스레 찾아온 해방, 마침내 김구는 솟구쳐 오르는 ‘슬픔의 축제’와 맞닥뜨린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드높여 과시할 만한 휘황한 깃발이 아니었다. 쫓기고 쫓겨나고 뭍에서 뭍에서 이리저리 피난하며 가까스로 지켜온 찢겨진 깃발이었다. 누더기였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내릴 수 없는,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투쟁의 상징이었다.”

소설 속 백범의 마지막 독백은 독립투사들의 처절한 아픔을 대변한다. 또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바른길’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한다. <해냄출판사·1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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