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한·일 축구 대결사…65년 전 첫 ‘도쿄 대첩’은?
“일본에 지면 현해탄 몸 던지겠다” 비장
1954년 광복 후 첫 대결에서 5-1 대승
스위스 월드컵 본선 진출
2019년 08월 14일(수) 04:50

1954년 3월 7일 일본 메이지진구구장에서 열린 한일전. 한국이 골을 넣고 있다. <한국축구 100년사 캡처>

광복 74주년을 맞는 올해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스포츠에서 한일전은 어느 때보다 주목받게 됐다.

올해 12월 부산에서 개최되는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때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과 일본의 대결 결과에 지금부터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한국 축구의 일본과 첫 맞대결은 어땠을까?

일본과 처음 맞붙은 건 광복 후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치른 1954년 스위스 월드컵 극동아시아 지역 예선이었다.

중국이 기권한 가운데 열린 아시아 예선에서 태극전사들은 ‘도쿄 대첩’의 기원을 만들며 한국 축구가 월드컵 무대에 데뷔하는 디딤돌을 놨다.

애초 한일전은 일본과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예선전을 치르게 돼 있었다.

하지만 “일본인이 우리 땅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반대에 부딪혀 두 경기 모두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한국 대표팀의 사령탑이었던 이유형 감독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출국 허가를 받는 자리에서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선수단 모두가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고 비장함을 드러냈다.

1954년 3월 7일 일본 심장부인 도쿄 메이지진구구장에서 열린 일본과 1차전에서는 한국 축구의 원조 스트라이커인 최정민과 정남식이 나란히 멀티골을 터뜨린 데 힘입어 5-1 대승을 거뒀다.

역대 한일전에서 5골(역대 최다골)을 넣고 이긴 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진눈깨비가 내려 진흙탕이 된 경기장에서 진행한 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은 투혼을 발휘해 ‘도쿄 대첩’의 첫 역사를 썼다.

한국은 1주일 후인 3월 14일 같은 곳에서 열린 2차전에서 2-2로 비겼지만 1승 1무의 성적으로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뤄냈다.

한국 축구는 이때를 포함해 총 10차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역사를 이어왔다.

65년 전 첫 ‘도쿄 대첩’의 생생한 역사는 광복절 하루 전인 14일 오후 5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원마운트 스포츠클럽 7층에서 토크 콘서트 ‘남북 축구 이야기 시리즈 1탄 - 일본의 경제침략, 우리는 일본을 항상 이렇게 이겼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남북체육교류협회(이사장 김경성)가 ‘도쿄대첩, 최초의 한일전’으로 기획한 이 행사에선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일전과 관련한 25점의 사진이 전시된다.

축구 수집가 이재형씨는 “광복 후 처음 열린 한일전이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축구 전쟁’으로 불릴 만큼 승부가 치열했다”면서 “첫 대결에서 5-1 대승을 거두면서 이 경기는 ‘도쿄 대첩’의 출발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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