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냉면, 삼복더위엔 이 맛
2019년 07월 24일(수) 04:50 가가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골구석에서 그것도 삼복더위 중에 태어난 내게 어르신들은 지지리 복도 없는 놈이라고 혀를 찼다. 가을, 겨울에라도 태어났으면 생일상이라도 차려줄 수 있겠지만 땡볕만 내리쬐는 오뉴월 생에게는 보리개떡도 못 먹일 판이니 위로인지 핀잔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하기야 어른들 생신이면 몰라도 가을인들 애들 생일에 떡 해주는 집은 본 적이 없고 인절미나 절편은 제사에나 먹을 수 있던 때가 70년대였다.
해거름이면 으레 마당에 놓인 평상 옆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식사하는 것이 그 시절 흔한 저녁 풍경이었다. 종일 땡볕 아래서 일하다 온 가족이 모여 먹는 한여름 별식은 팥죽이었다. 동짓달에 먹는 팥죽은 찹쌀과 맵쌀 가루를 돌돌 말아 새알을 빚어 넣지만 한여름 팥죽은 대개 칼국수를 만들어 넣는다. 밀가루가 흔하던 시절이었으니 물 부어 반죽하고 홍두깨로 밀어 썰어 내면 동지 팥죽보다 만들기 쉬운 편이다. ‘타닥 타닥’ 모깃불로 올린 콩 줄기 타는 소리를 들으며 평상에서 먹던 팥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향연이었다. 뜨거울 때도 맛있지만 아침까지 남아 식어 빠지고 숟가락으로 먹어야 할 만큼 굳었어도 불면 날아갈 듯한 보리밥에 비할 바 아니었으니 말이다.
팥은 콩과는 사촌 뻘 되는 잡곡으로 소두 혹은 적두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콩이라 부르는 콩나물 콩에 비해 작고 붉은 빛을 띠고 있어서 예로부터 귀신을 쫓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사당에 떠다 놓고 차례를 지낸 뒤 집안 곳곳에 한 그릇씩 놓고는 대문, 벽, 문설주 등에 국물을 흩뿌렸다. 그렇게 하면 액을 막고 귀신을 쫓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동네에 초상이 나면 팥죽을 쑤어 가져갔고, 명절이나 고사를 지낼 때 상에 올리는 시루떡은 팥고물을 사용하며, 백일과 돌잔치 상에 수수팥떡이 올라가는 것도 그런 주술적 이유 때문이다.
단백질과 당질이 주성분인 팥에는 지방과 탄수화물, 미네랄, 비타민도 많이 들어 있다. 특히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에게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 B1이 곡류 중에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고,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은 노화와 암의 원인이 되는 활성 산소를 제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또한 췌장과 신장의 기능을 강화하여 당뇨 예방에도 효과적이고, 다른 곡물에 비해 10배 이상 들어있는 칼륨은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해 줘 혈압 조절에도 뛰어나다. 식이 섬유가 풍부하여 변비와 다이어트에 좋을 뿐 아니라, 적당히 갈아 얼굴에 발라두면 각종 피부염과 기미, 주근깨 등을 치료하는데 그만이다.
설탕이 줄 수 없는 풍부하고 그윽한 맛으로 떡 외에도 찐빵이나 호두과자에 넣는 소로도 가장 어울리는 재료이지만, 안타까운 것은 수입산 가격이 국내산의 반에도 미치지 않으니, 밖에서 사먹는 팥치고 국내산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장마철이라지만 더위가 기승이다. 습도까지 높아 후덥지근한 날씨에는 짜증이 일게 마련이고 입맛마저 잃어버리기 쉽다. 옛부터 이런 삼복에는 더위를 이겨내고 몸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음식을 먹고 시원한 곳에서 몸을 쉬게 했는데, 이를 복달임이라 하여 궁중이나 상류층에서는 소고기나 민어탕을, 서민들은 개장국이나 닭고기, 팥죽으로 보양했다고 한다.
시대가 달라지긴 했어도 세시풍속으로 절기에 맞춰 먹는 음식이니 이런저런 탕을 찾아 다니는 게 무더위 속 한 때의 즐거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요즘 같은 영양 과잉 시대에 이런 고열량식이 건강에 유익할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점잖게 민어탕이라도 맛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리 흔해졌다고 민어집이 골목마다 있는 것도 아니고, 가격은 소고기 빰 칠 지경이니 팥죽은 요맘때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전통적으로 정선, 영월, 평창 등 강원도가 팥 주산지라지만 몇 해 전부터 신안, 함평, 무안, 나주 등 우리 고장에서도 재배 면적이 늘고 있는데, 기름진 음식만 찾지 말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팥 칼국수 한 번 만들어보자.
차가운 냉면이 겨울 음식이라면 뜨거운 팥죽은 삼복더위에 먹는 복달임으로 제격이니, 몸보신도 몸보신이거니와 아이들 혀 끝에 남을 추억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설탕이 줄 수 없는 풍부하고 그윽한 맛으로 떡 외에도 찐빵이나 호두과자에 넣는 소로도 가장 어울리는 재료이지만, 안타까운 것은 수입산 가격이 국내산의 반에도 미치지 않으니, 밖에서 사먹는 팥치고 국내산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장마철이라지만 더위가 기승이다. 습도까지 높아 후덥지근한 날씨에는 짜증이 일게 마련이고 입맛마저 잃어버리기 쉽다. 옛부터 이런 삼복에는 더위를 이겨내고 몸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음식을 먹고 시원한 곳에서 몸을 쉬게 했는데, 이를 복달임이라 하여 궁중이나 상류층에서는 소고기나 민어탕을, 서민들은 개장국이나 닭고기, 팥죽으로 보양했다고 한다.
시대가 달라지긴 했어도 세시풍속으로 절기에 맞춰 먹는 음식이니 이런저런 탕을 찾아 다니는 게 무더위 속 한 때의 즐거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요즘 같은 영양 과잉 시대에 이런 고열량식이 건강에 유익할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점잖게 민어탕이라도 맛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리 흔해졌다고 민어집이 골목마다 있는 것도 아니고, 가격은 소고기 빰 칠 지경이니 팥죽은 요맘때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전통적으로 정선, 영월, 평창 등 강원도가 팥 주산지라지만 몇 해 전부터 신안, 함평, 무안, 나주 등 우리 고장에서도 재배 면적이 늘고 있는데, 기름진 음식만 찾지 말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팥 칼국수 한 번 만들어보자.
차가운 냉면이 겨울 음식이라면 뜨거운 팥죽은 삼복더위에 먹는 복달임으로 제격이니, 몸보신도 몸보신이거니와 아이들 혀 끝에 남을 추억을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