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시바의 전설이 흐르는 곳…수많은 순례자들의 성지
2019년 07월 19일(금) 04:50
10부 ‘네팔’ (7) 파슈파티나트·구헤스와리 사원에 얽힌 신화
조용히 살고 싶은 ‘파괴의 신’시바
신의 위치로 돌아오라는 다른 신들
‘파괴의 신’시바의 운명 사띠
사띠의 죽음으로 첫결혼에 실패하지만
환생한 사띠와 다시 부부의 연 이어

네팔의 신년을 맞아 시바 신을 모신 사원을 찾은 현지인들이 언덕 위에서 파슈파티나트 사원 전경을 바라보고 있다.

할아버지 목말을 타고 파슈파티나트 사원을 방문한 한 어린이가 수많은 인파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시바의 첫 번째 결혼 실패 무대가 되는 구헤스와리 사원 정문.


시바의 첫 번째 결혼 실패 무대가 되는 구헤스와리 사원 정문.


“그저 조용히 살고 싶다.”

히말라야산맥 카일라시(Kailashi) 산에 살고 있던 파괴의 신 ‘시바’(Shiva)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카일라시 산이 싫증난 데다, 신이라는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몰래 궁을 빠져나온 시바는 네팔 카트만두(Kathmandu) 현 파슈파티나트(Pashupatinath) 일대에서 발길을 멈췄다.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된 그는 다른 신들에게 들켜 다시 카일라시 산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사슴으로 변신해 자신의 존재를 숨겼다. 사슴으로 변신한 뒤 동물의 신 ‘파슈파티’(Pashupati)가 된 시바는 그 삶 자체가 너무도 좋았다. 다른 신들이 찾아와 도움을 청해도 듣지 않고, 사슴이 돼 그곳을 뛰놀며 조용히 살아갔다.

하지만 다른 신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들은 수호신 ‘비슈누’(Vishnu)를 찾아가 시바가 돌아올 수 있도록 파슈파티 신을 제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비슈누는 시바가 변신한 사슴의 뿔을 잡아 여러 갈래로 찢어 죽이고, 뿔은 링가(linga)로 만들어 강뚝에 버렸다.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소 한마리가 사슴이 죽은 자리를 찾아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우유를 흘려넣어 줬다. 며칠이 지나 소는 그 땅을 파헤쳤고, 비슈누가 버렸던 링가를 꺼냈다. 링가를 찾은 소는 이곳에 동물의 신 파슈파티를 경배하는 마음으로 파슈파티나트 사원을 만들었다.

‘신의 나라’ 네팔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 시바와 파슈파티나트 사원에 얽힌 전설이다. 전설 속에서 나오는 링가는 여성과 남성의 생식기가 합쳐진 남근상으로, 시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조각상이다. 파슈파티나트 주변에는 여전히 사슴들이 살고 있고, 링가 조각상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파슈파티나트에서 약 2㎞ 떨어진 곳에는 구헤스와리(Guheswori) 사원이 있다. 이곳은 시바의 첫 번째 결혼 실패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시바와 결혼할 운명으로 태어난 여성 ‘사띠’(Sati)는 ‘닥사프라자파티’(Daksaprajapati) 신의 딸이다. 닥사프라자파티는 희생제를 지내고 있을 때 사위인 시바가 자신에게 절을 하지 않자 자존심이 상했다. 참석자들 앞에서 시바와 자신의 딸을 결혼시킨 것을 후회하는 발언을 하며 시바를 비난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띠는 남편 시바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불에 뛰어 들었다.

부인 사띠가 목숨을 잃자 극도로 화가난 시바는 격분을 참지 못하고 장인인 닥사프라자파티를 죽인 뒤 주변을 파괴했다. 그리고 불에 탄 사띠의 시체를 품에 안고 온 세상을 휘졌고 다녔다. 그때 불에 탄 사띠의 생식기가 떨어진 곳이 지금의 구헤스와리 사원이다. 구헤스와리는 여성의 생식기를 뜻한다.

시바는 사랑하던 부인 사띠를 잃은 채 첫 번째 결혼에 실패했다. 하지만 시바와 사띠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시바는 그후로 수행에만 몰두했다. 신으로서의 의무를 잊고 수행만 하자 우주의 질서가 깨질 것을 염려한 다른 신들은 시바의 혼인을 추진하기로 했다.

‘파르바티’(Parvati)는 시바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불 속에 뛰어들었던 사띠가 환생해 태어난 여인이었고, 그녀는 시바와 결혼하길 원했다. 사띠의 환생이라는 걸 모르는 시바는 당연히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

이에 다른 신들은 사랑의 신 ‘캄데브’(Kamadev)를 시켜 명상 중인 시바에게 ‘사랑의 화살’을 쏘라고 시켰다. 화살을 맞아 화가난 시바는 캄데브를 태워 죽였지만, 화살의 효력으로 파르바티와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혼인을 하게 된 시바와 파르바티는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1000년간 오로지 성관계만 맺었다. 또다시 신의 의무를 잊은 채 무려 10만8000개 체위로 사랑을 나누던 그들은 다른 신들의 방해로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힌두교에서 가장 사랑받는 신 시바와 얽힌 이야기가 전해져오면서 여전히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파슈파티나트와 구헤스와리 사원은 힌두교인이 아닌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신성시 여겨지고 있다.

/네팔 카트만두=박기웅 기자 pbox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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