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풍도, 오대십국 다섯 왕조 재상 지낸 처세의 달인
2019년 07월 02일(화) 04:50

<초당대총장>

풍도(馮道, 882~954)의 자는 가도(可道)이며 허베이성 셴현(獻縣) 출신이다. 오대십국 시대 다섯 왕조의 재상을 지낸 처세의 달인으로 평가받는다.

풍도는 평범한 가문 출신이다. 노룡절도사 유수광의 참모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유수광은 부친의 애첩과 정을 통하고 형을 죽인 잔혹한 인간이었다. 대연(大燕) 황제를 자칭하였는데 후당의 이존욱에게 대패했다. 그는 이존욱 휘하에 들어가 환관 장승업의 눈에 띄어 하동 절도장서기로 취임했다. 이존욱은 장종으로 제위에 올랐는데 그를 호부시랑 겸 한림학사로 임명했다. 장종은 후량을 멸망시키고 낙양으로 천도했다. 이후 부친상을 당해 3년 상을 치렀다. 복상 중 일반 농민처럼 농사를 짓고 전답을 돌보았다. 장종은 황음에 빠져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사천을 평정한 곽숭도를 환관의 말에 속아 주살했다. 장종의 가자(假子) 이사원이 반란을 일으켜 새 황제가 되니 명종이다. 명종 사후 3남 이종후가 즉위했지만 명종의 양자인 봉상절도사 이종가에게 살해되었다. 풍도는 “마땅히 만사에 성심을 다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이종가에게 충성을 다했다. 이종가가 명종의 사위인 하동절도사 석경당을 제거하려 하자 석경당은 거란의 도움을 요청했다. 거란군과 함께 낙양으로 진격해 후당을 멸망시키고 후진을 수립했다. 수도를 개봉으로 천도했다.

풍도는 후진에서도 재상의 직위를 이어갔다. 938년 국호를 요로 바꾼 거란의 태후책례사로 파견되었다. 태종 야율덕광의 신임을 받아 요에 오래 머물러 달라는 청을 받았다. 태종은 엄청난 금품을 하사하였다. 결국 태종의 허락을 받아 귀국길에 올랐는데 서두르지 않고 국경을 넘었다. 왜 이리 천천히 이동하느냐는 측근의 물음에 답하기를 “아무리 서둘러도 요나라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 뒤쫓아 올 것이므로 천천히 가는 것이 더 안전하다.”

석경당이 죽은 후 후계 싸움이 벌어져 조카 석중귀가 황제가 되었다. 권력을 잡은 경연광 일파가 반요 노선을 채택해 요나라의 침공을 자초했다. 야율덕광이 친정해 석중귀를 생포하고 갖은 횡포를 저질렀다. 태부로 임명되자 태종을 설득해 가혹한 공포정치를 중지시켰다. “백성은 부처님이 재림해도 해낼 수 없고 오직 황제만이 이를 구할 수 있습니다”고 탄원해 무자비한 살생을 막았다.

하동절도사 유지원이 진양에서 후한을 세웠다. 유지원은 그에게 수대사라는 명예직을 하사했다. 유지원이 1년만에 죽고 절도사 곽위가 군대를 동원해 개봉에서 즉위하니 후주의 태조다. 3년 후 954년 태조가 죽자 산릉사로 임명되던 해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후당, 후진, 요, 후한, 후주의 5왕조에 출사해 8성 11군을 섬겼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이에 따라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간다. 신오대사를 편찬한 북송의 구양수는 “염치없는 자라 할 수 있다”며 카멜레온적 처신에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청나라의 사가 조익은 이십이사차기에서 “풍도, 10군을 섬기어 마음에 송구스럽지 않고 스스로를 장락노자라 칭하며 나아가 받은 위계와 훈장, 관작을 영광으로 삼다. 수치가 있음을 모르는 자라 하겠다”고 혹독히 비판했다. 사마광은 자치통감에서 “임금은 흥하고 망했으나 풍도의 부귀는 그대로였으니, 이는 곧 간신보다 더하다. 어찌 다음 사람과 비교될 수 있겠는가?”라며 혹평했다.

반면에 북송의 왕안석, 부필, 소철 등은 대인(大人)으로 평가했다. 특히 왕안석은 “풍도가 자기 자신을 낮추어 백성을 평안하게 한 행동은 불가에서 보살들이 한 것과 같다”고 극찬하였다. 명나라의 이탁오는 “백성이 전란의 고통을 면하게 된 것은 풍도가 백성을 안양(安養)하는데 전력을 다한 덕분이다”며 변호하였다.

풍도는 말년에 스스로를 장락노자(長樂老子)라 불렀는데 나라의 사직과 군주를 구분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직이 아니라 백성의 삶이었다. 일본 작가 도나미 마모루는 나라를 임금보다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 풍도의 길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들이 편안하게 먹고 사는 안양(安養)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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