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관 기행 <7>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 궁전
‘좋은 전망(Bel Vedere)’에서 바라보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키스’
세계문화유산 벨베데레 궁전
바로크 양식 격조 있는 왕궁
클림트 ‘키스’ ‘유디트’ 작품
도시 전체가 거대한 전시관
오스카 코코슈가 ‘바람의 신부’
에곤 실레 ‘가족’ 분리파 작품
2019년 06월 25일(화) 04:50
















지난해 가을, 벨베데레 궁전 앞은 이른 시간에도 많은 인파로 활기가 넘쳤다. 빈 남동쪽에 자리한 벨베데레 궁전은 바로크 양식의 우아한 건축미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반갑게 방문객을 맞았다. 고풍스런 건물과 파란 하늘, 공들여 가꾼 정원과 꽃들이 어우러져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품이었다.

누가 뭐래도 빈 여행의 꽃은 벨베데레 궁전이다. 도시 전체에 미술사박물관·레오폴트미술관·알베르티나미술관·쿤스트하우스 등 세계적 명성의 미술관들이 즐비하지만 빈 미술관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벨베데레 궁전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도 바로 이 곳이다. 격조있는 왕궁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데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1862~1918)의 ‘키스’ ‘유디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빈은 도시 전체가 클림트의 작품으로 꾸며진 거대한 전시관이나 다름없다. 빈 공항에서 가장 먼저 관광객을 기다리는 것도 바로 클림트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키스’(The Most Famous Kiss in the World)라는 문구와 함께 공항 벽면에 내걸린 ‘키스’는 도심의 레스토랑이나 골목길의 작은 서점 등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흔히 궁전하면 왕이 기거하는 곳으로 여기지만 벨베데르 궁전은 고위관료의 관저로 쓰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벨베데레는 1683년 빈을 침공한 튀르크 군대를 격퇴한 프랑스 출신의 전쟁 영웅 오이겐 공이 살던 여름 별장이었다.

‘좋은(Bel) 전망(Vedere)’라는 뜻을 지닌 궁전은 두개의 건물로 구성됐다. 경사진 언덕 위에 있는 상궁(upper)벨베데레는 1723년에 건립됐고 북쪽의 낮은 대지에 있는 하궁(Lower) 벨베데레는 1716년에 완공됐다. 매년 여름에 이곳에 머물던 오이겐공이 세상을 떠나자 합스부르크가에서 매입해 증축한 후 미술 수집품을 보관했다. 합스부르크가는 음악, 미술, 건축, 철학, 문학 등으로 왕조의 권위와 품위를 유지했는데 현재 빈 전역에 30여 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남아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보편적 개념의 미술관으로서 제 모습을 갖추게 된 건 지난 1903년, 하궁에 국가 소유의 모던 갤러리(Modern Gallery)가 문을 열게 되면서 부터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제국시대의 컬렉션(imperial collection)과는 다소 상반된 의미의 미술관 역할을 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장하는 공간으로 차별화 시켰다.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오스트리아 예술가들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려는 취지에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직접 구매하는 한편 개인 컬렉터들로부터 기증을 받았다.

아르누보계열의 ‘키스’는 미술관이 직접 구매한 대표작이다. 1908년 오스트리아 문화교육부는 벨베데레 궁전의 아이콘으로 키우기 위해 클림트로 부터 ‘키스’(1907년 작)를 사들였다. 이 작품을 통해 벨베데레는 오스트리아의 미술관에서 세계의 미술관으로 비상하는 계기를 맞았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클림트의 작품에 주목한 건 남다른 그의 예술철학 때문이다. 클림트는 19세기 말 보수적인 정통 미술가협회에 맞서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분리파’의 선두 주자였다. 이들은 19세기 말 보수적인 분위기와 소수 귀족 후원자들의 취향에 영합하는 오스트리아 문화 풍토의 단절을 선언했다. 말 그대로 과거와 분리한다는 뜻인 데 벨베데레의 외연을 넓히려는 오스트리아 정부의 방향과 일치했다. 그래서인지 벨베데레에는 클림트의 작품 15점과 에곤 실레의 작품 등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활동한 오스트리아 대표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다수 전시하고 있다.

벨베데레궁전의 전시동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수십 여 명의 관람객이 몰려 있는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미술관의 수퍼스타인 ‘키스’로 황금빛의 캔버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공간을 압도한다. 키스의 황홀함과 행복한 연인의 마음을 금색으로 표현한 작품은 전시장의 어두운 분위기를 뚫고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작가 개인의 경험을 모티브로 삼은 ‘키스’는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와 같은 존재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클림트는 희대의 바람둥이로도 유명하다. 그가 죽자마자 14명의 사생아들이 어머니를 대신해 친자 소송을 벌였다고 하니 여성편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화려하고 에로틱한 그림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생전의 삶은 매우 가난했다. 크리스마스 때 집에 빵이 없어 굶어야 할 정도로 궁핍한 시기도 있었다. 이와 관련 흥미로운 일화 한토막. 56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극빈한 생활을 했지만 훗날 그의 작품 가운데 하나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초상’이 1억3500달러(한화 약 1300억원)에 팔렸다는 사실이다. 당시 미술경매사상 최고의 가격이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평생 가난과 싸워야 했다. 미국의 유명 화장품 회사인 에스티 로더가에 판매된 이 작품은 벨베데르에선 감상할 수 없다.

클림트와 함께 벨베데레의 품격을 높여주는 건 그를 추종했던 화가 에곤 실레(Egon Schiele·1890~1918) 등 분리파의 작품들이다. 클림트에 비견되는 천재화가 에곤 실레의 대표작인 ‘가족’을 비롯해 오스카 코코슈카의 ‘바람의 신부’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벨베데레궁전에서는 모네·마네·르누아르·밀레 등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장의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현대미술관이 밀집해 있는 빈의 MQ(무제움스 크바르티어)에 자리한 ‘레오폴트 미술관’에 들러 보는 것도 좋다. 오스트리아에서 에곤 실레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대표작인 ‘발리의 초상’, ‘추기경과 수녀’,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 등을 만날 수 있다.

/빈=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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