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년 <11> 문예영화 전성시대
소설과 영화의 행복한 동행… ‘문예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
우수영화 선정 땐 외화 수입 권한 줘
1960년대 중반, 반공·계몽영화와 활기
김수용 감독 ‘갯마을’ 흥행으로 전성기 맞아
보상제도 제외되면서 주춤… 현재도 단골소재
2019년 06월 05일(수) 04:50










1960년대 중반 한국영화는 ‘문예영화’를 유행시키게 된다. 쉽게 말해, 문예영화는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들을 일컫는다. 1966년 문화공보부가 외화수입쿼터를 지급하는 우수영화 부문에 반공영화, 계몽영화와 함께 문예영화를 포함하면서 문예영화 제작은 활기를 띠었다. 문예영화를 연출하면 외국 영화 수입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감독들은 흥행에 대한 부담감을 덜고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문예영화에 대해서는 검열이 다소 느슨했던 것도 감독들이 문예영화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 그리고 문예영화는 그 정의를 엄밀하게 따지지 않았기 때문에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라는 뜻 이외에도 예술적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를 뜻하는 말로 통용되며 예술로서의 영화를 고민하기도 했다.

김수용은 ‘갯마을’(1965)을 흥행시키면서 문예영화 전성기를 이끈 감독이었다. 그는 유명한 원작을 골라 끊임없이 영화화하였으며, 그로 인해 주옥같은 명편을 남길 수 있었다. 그가 선택한 한국문학의 정수를 몇 편만 일별해 보아도 이는 금방 확인된다. 이광수의 ‘유정’(1966), 김동리의 ‘까치소리’(1967), 천승세의 ‘만선’(1967), 차범석의 ‘산불’(1967),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안개’(1967),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가 원작인 ‘시발점’(1968), 박계주의 ‘순애보’(1968), 그리고 박경리의 ‘토지’(1974)에 이르기까지 김수용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작가들은 물론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소설을 영화로 옮기며, ‘문예영화의 대부’라는 호칭을 부여받았다.

오영수의 단편소설을 영화로 만든 ‘갯마을’은 김수용의 문예영화에 도화선이 되었던 작품이다. 그리고 남정임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유정’의 대성공으로 김수용은 특급 흥행감독으로 급부상하기도 했으며,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영화로 옮긴 ‘안개’는 60년대 한국사회의 권태로운 풍경을 의식의 흐름을 좇는 세련된 표현력으로 담아내며 김수용의 대표적인 문예영화로 평가받았다.

이만희 역시 이 시기 문예영화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감독이다. ‘흑맥’(1965)과 ‘물레방아’(1966), ‘싸릿골의 신화’(1968)는 각각 이문희, 나도향, 선우휘의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만희는 원작을 영화로 옮긴 작품들보다는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든 작품들에서 장점을 발휘했다. ‘만추’(1966)와 ‘귀로’(1967) 그리고 ‘휴일’(1968)이 바로 그 영화들이다. 이들 작품에서 이만희는 기존의 한국영화들과는 차별화된 영상감각을 선보였다. 대사나 플롯에 의지하기보다는 영상을 통한 분위기의 영화를 연출했던 것이다. 필름이 유실되어 현재는 확인할 길이 없는 ‘만추’는 당시 이 영화를 보았던 이들로부터, 줄거리 위주의 전개방식을 벗어난 묘사 위주의 영화로 정제된 대사와 뛰어난 영상미가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그리고 ‘인간의 절대우수를 주제로 한 한 편의 시’라는 평가는 ‘만추’의 명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케 한다.

‘만추’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아 아쉽기는 하지만, ‘귀로’와 ‘휴일’을 통해 이만희 감독의 영화적 개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귀로’는 한국전쟁에서 성불구가 된 남편(김진규)과 방황하는 아내 지연(문정숙)의 이야기다. 남편으로부터 떠나지도, 돌아가지도 못하고 흔들리는 지연의 모습과 황량한 서울의 풍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 영화는, 극한 상황에 처한 인물의 심리와 공간 묘사에 탁월했던 이만희 감독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휴일’은 휴일에 만난 가난한 연인의 하루를 담고 있다.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어둡고 우울한 정서 때문에 1968년 당시 상영금지 처분을 받은 영화로 2005년이 되어서야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인물이 처한 공간의 풍경과 분위기로 말을 걸고 있는 이 영화는, 이만희 감독의 우울함과 절망의 깊이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국가의 통제와 검열로 인해 마음먹은 대로 영화를 찍을 수 없었던 감독의 내면이 암담함에 처한 주인공들의 모습에 투영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기 유현목 감독 역시 원작의 영화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대표작 중 한 편인 ‘오발탄’(1961)을 시작으로 1960년대 전반기에만 ‘김약국의 딸들’(1963), ‘잉여인간’(1964) ‘순교자’(1965)를 발표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문예영화에 관심을 가져 ‘막차로 온 손님들’(1967), ‘카인의 후예’(1968)등을 내놓았다. 이들 영화 중 황순원 원작의 ‘카인의 후예’는 유현목 감독의 대표적인 문예영화이자 반공영화다. 흥행이 보장되는 외화수입쿼터를 따기 위해 당대의 대표적인 감독이 반공영화를 찍은 것은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카인의 후예’는 개봉 당시 ‘반공영화의 차원을 한 단계 뛰어넘은’ 작품이라고 평가받았다.

이 시기 문예영화 붐에 일조한 감독 중에는 이성구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황순원과 이효석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일월’(1967)과 ‘메밀 꽃 필 무렵’(1967)에 대해 당시 언론과 평단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1968년에는 이어령 원작의 ‘장군의 수염’을 연출하며 기염을 토했다. ‘장군의 수염’은 한 사진기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두 형사가 추적하며 재구성하는 내용의 영화다. 이 작품은 시간순서가 뒤엉켜있는 내러티브 구성과 애니메이션과 회화를 과감하게 활용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그리고 엔딩에 있어서도 범인은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우리 사회 전체라는 다소 관념적인 마무리를 선택하고 있다. ‘장군의 수염’은 한국영화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영화였으며, 이성구 감독을 모더니스트나 형식실험가 등으로 칭하는 후대의 평가는 이 영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68년 후반기 우수영화 보상제도에서 문예영화가 제외되면서 원작소설의 영화화 붐은 주춤해진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원작이 있는 영화를 집중해서 만들었던 시기가 지났을 뿐, 원작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은 이후로도 계속 되었으며, 현재에도 좋은 이야기를 내장하고 있는 소설은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

정리하자면, 한국의 문예영화는 우수영화로 선정되면 흥행이 보장되었던 외화를 수입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던 정부 정책에 맞춰, 1960년대 중·후반 집중적으로 일어났던 한국문학과 한국영화의 행복한 동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흐름 속에서 이야기라는 공통분모를 갖긴 하지만 소설과는 다른 영화라는 매체를 실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조대영 광주독립영화관 프로그래머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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