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헌권 광주 서정교회 담임목사] 사월의 편지
2019년 04월 12일(금) 00:00
194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T.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 제1부 ‘죽은 자의 매장’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고 노래했습니다. 시인 신동엽도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런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노래했습니다. 이처럼 시인들이 사월을 잔인한 달과 ‘껍데기는 가라’고 말하는 것은 봄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필자는 4월이 되면 역사의 밀알이 된 사람들에게 마음의 편지를 쓰곤 합니다.

먼저 미국 남북 전쟁에서 승리해 연방을 보존하고 노예 해방을 위해 헌신했던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제16대 대통령(1865년 4월15일 암살)이 떠오릅니다. 또한 독일 나치 정권에 저항하며 말씀을 현장에서 실천하다가 순교한 독일의 청년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1945년 4월 9일 처형) 목사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때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민족의 십자가를 지고 순교한 주기철 목사(1944년 4월21일 순교)도 생각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 선거에 항의하다가 행방불명된 후 마산 앞바다에서 주검으로 발견돼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열사가 있습니다. 민청학련을 배후 조정했다는 혐의로 인혁당 관련자들이 사형 선고 다음날 교수대에서 목숨을 빼앗겼던 날도 4월 9일입니다. 또 야만의 독재에 항거하며 스스로 목숨을 민족 제단에 바치고 자유를 향해 날아간 또 다른 젊은이가 바로 김상진 열사(1975년4월12일)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제주도 4·3 항쟁은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 전쟁 다음으로 많은 억울한 희생자가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쓴 편지는 먹먹하지만 역사의 밀알이 된 정의의 편지입니다.

특히 필자는 사월이 되면 하늘의 바람과 별이 된, 차마 부를 수 없는 꽃들이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304개의 꿈이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세월호 5주기가 지나도 기억해야 할, 2014년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 한 명 한 명의 이름입니다.

필자는 날마다 세월호 달력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아이들 생일과 이름을 기억하면서 안부를 전하는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들이 있습니다. 권재근·혁규 부자, 남현철(단원고 2학년 6반), 박영인(단원고 2학년 6반), 양승진(단원고 교사).

세월호 유가족 ‘꽃누르미’ 모임 ‘꽃마중’에 있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필 봄이었습니다. 꽃들이 막 필 때였지요. 한동안 꽃들은 꼴도 보기 싫었습니다. 너무 아파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보낸 아이들입니다. 고이 보내지 못한 아이들도 남아 있습니다. 사실은 활짝 핀 꽃을 보는 것이 여전히 두렵고 미안합니다”

이처럼 꽃만 봐도 서러운, 잔인한 4월을 또다시 보내고 있습니다. 사라져버린 다섯 해의 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진실과 정의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기억을 지워내는 일만 하고 있는 듯합니다. 통곡과 고통의 바다인 팽목항에 기억 공간이라도 만들어 달라는 요구는 버겁기만 합니다. 광화문 광장을 지키던 천막들도 기억의 공간도 자리를 내주게 되었습니다.

필자의 가슴에는 세월호 목걸이가 걸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그만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노란 리본을 뗄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억센 샛바람 뚫고/ 쉼 없이 연둣빛 자라/ 피고 또 피어// 아려오는 가슴/ 엷은 해무 위로/ 부표처럼 떠오르는/ 보고픔 잔물져 일렁인다// 끝없이 흘러 흘러/ 아련히 수평선 가슴에 멍든 쪽빛// 침몰한 시간 바라보며/ 고요 속에 속울음 삼키며/ 차마 부를 수 없는/ 꽃 이름 또다시/ 읊조린다”(졸시 ‘4월의 안부’ 전문)

지금 교회에서는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묵상하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4월은 잔인함과 껍데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짓밟힌 보리밭에 새싹이 돋아나는 4월입니다. 절망과 잔인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망과 부활의 소식이 있는 편지를 전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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