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도달 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 (251) 숭고
2018년 12월 27일(목) 00:00

프리드리히 작 ‘바닷가의 수도사’

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그동안의 보람과 성취보다는 촘촘히 살아내지 못한 삶의 여정에 대한 반성과 회한이 더 밀려오는 것 같다.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는 나만의 의식이 필요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심란하거나, 마음을 다잡고 싶을 때 찾아가는 영암 월출산은 부모님의 고향이자 선산이 있는 곳으로 둘러보기만 해도 마음의 위안이 된다. 남녘의 순한 평야지대에서 갑자기 높이 솟아오른 힘찬 월출산의 위용과 압도감은 숨이 멎는 듯한 감동을 선사하면서 그 순간만큼은 현실을 초월하게 해주는 것 같다.

자연에 매혹되는 순간, 우리가 갖게 되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서양 근대미학에서는 ‘숭고미’라 부르기도 한다. 특히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숭고를 중요한 미적 범주로 부각시켰는데, 숭고감은 자연의 크기와 위대함에 대해 우리가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 한계에 도달할 수 없을 때 생겨난다고 정의했다.

칸트는 높이 솟아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한 절벽, 번개와 우레를 품고 유유히 다가오는 하늘, 높이 피어오른 먹구름, 파도가 치솟는 끝없는 대양의 위력에 대비하면 그것들에 대항하는 인간의 능력은 보잘 것 없이 작은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그 대상들이 인간의 정신력을 끌어올리고 내부에 존재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저항 능력을 발휘하게 만들어 자연의 절대적 힘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의 ‘바닷가의 수도사’(1809~10년 작)는 숭고를 바라보는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그림으로 꼽힌다. 무한히 펼쳐져있는 어두운 밤하늘과 바다,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게 표현된 인물의 크기를 대비하고 있는데 등을 돌리고 있는 인물을 통해 우리도 그와 함께 자연의 웅장한 장관, 숭고의 순간 속으로 들어가 그 숭고의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광주비엔날레정책기획실장·미술사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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