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교육부 장관
2018년 11월 13일(화) 00:00 가가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이 우여곡절 끝에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교육부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교원 단체, 학부모 단체, 야당의 거센 반발이 있었는데 대통령은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몰아붙인 것이다. 좀 늦었지만 이를 보고 몇 가지 생각을 해 본다.
우리나라 역대 정부 중에 교육을 중시하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정권 출범 초기에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교육의 중요성을 절절히 강조하곤 했다. 교육은 ‘국가 백년지대계’(國家百年之大計)인 만큼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교육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킨 것도 교육을 중요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교육을 중시한다고 교육이 바로 서지는 않는다. 교육 정책을 총괄하고 집행하는 사람은 교육부의 수장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교육부 장관을 심사숙고하여 임명해야 한다.
그런데 역대 정부의 교육부 장관 임명을 보면 정권 출범 시의 초심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교육과는 무관한 정치인을 임명하기도 하고, ‘대학이 산업화되어야 한다’고 외치면서 경제 전문가를 교육부 장관에 임명하기도 했다. 또 교육학을 전공한 교수나 대학 총장을 임명하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어떤 대학 총장 출신의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IT와 영어 교육에 교육의 목표를 두겠다’고 황당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교육부 장관이라면 교육의 본질에 대한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교육에 대한 큰 틀의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이 ‘큰 틀의 그림’이 바로 ‘국가 백년지대계’이다. 교육의 효과는 단시일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백 년 앞을 내다보고 설계를 해야 한다. 기껏 IT나 영어 교육을 강조하고 대학을 산업화시키려는 근시안적 안목으로는 교육을 바로 세울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초·중등학교와 대학에서의 교육 경험을 두루 갖추고 긴 안목의 교육 철학을 가진 인사가 교육부의 수장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런 인물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차선책으로는 적어도 초·중등학교의 교직 경력이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초·중등학교의 교직 경력이 없는 대학교수가 장관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도덕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건전한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고 볼 때 이 목표를 제대로 달성할 수 있는 교육의 장(場)은 유치원을 포함한 초·중등학교이다.
범위를 더 좁히면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가장 중요하다. 이 시기의 경험은 앞으로의 인성(人性)과 가치관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비유하자면 유아기의 교육은 백지(白紙)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미래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림을 그려 주는 사람이 교사이다. 물론 후천적으로 바뀌기 어려운 ‘타고난 성격’이 있기 마련이지만 교사의 지도 여하에 따라 상당 부분 달라질 수 있다. 우리 어른들은,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사소한 일상의 습관에서부터 가치관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치원과 초·중등학교가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대학교는 이런 의미에서의 교육이 이루어진다기보다 전문 지식을 전수(傳授)하는 곳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또 대학생은 이미 어느 정도의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어 교화(敎化)가 쉽지 않다. 진정으로 백 년 앞을 내다보는 교육을 생각한다면 유치원과 초·중등 교육을 획기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더 이상 유치원을, 맞벌이 부부가 잠시 아이를 맡기는 곳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최근에 불거진 사립 유치원 사태 이후 몇 가지 법안이 발의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안 되고,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최고의 인격을 갖춘 훌륭한 인사가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원이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20대의 젊은 교사가 아닌, 풍부하게 인생을 경험한 중후한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대학교수는 인격보다 전문 지식을 가졌느냐의 여부가 더 중요하다. 현역 국회의원으로 있는 어느 인사가 과거 교육부 장관 시절에 나이 많은 교사를 죄인 취급하듯 퇴직시킨 일이 있었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한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각급 학교 교원의 임금 체계를 크게 바꾸어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원을 가장 우대하고 그 다음으로 중·고등학교 교원, 그 다음으로 대학교수 순서로 하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정말 훌륭한 교사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모이지 않을까? 교직 경험이 전혀 없는 유은혜 장관이 과연 이러한 교육 문제를 제대로 풀어 갈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초·중등학교와 대학에서의 교육 경험을 두루 갖추고 긴 안목의 교육 철학을 가진 인사가 교육부의 수장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런 인물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차선책으로는 적어도 초·중등학교의 교직 경력이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초·중등학교의 교직 경력이 없는 대학교수가 장관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도덕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건전한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고 볼 때 이 목표를 제대로 달성할 수 있는 교육의 장(場)은 유치원을 포함한 초·중등학교이다.
범위를 더 좁히면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가장 중요하다. 이 시기의 경험은 앞으로의 인성(人性)과 가치관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비유하자면 유아기의 교육은 백지(白紙)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미래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림을 그려 주는 사람이 교사이다. 물론 후천적으로 바뀌기 어려운 ‘타고난 성격’이 있기 마련이지만 교사의 지도 여하에 따라 상당 부분 달라질 수 있다. 우리 어른들은,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사소한 일상의 습관에서부터 가치관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치원과 초·중등학교가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대학교는 이런 의미에서의 교육이 이루어진다기보다 전문 지식을 전수(傳授)하는 곳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또 대학생은 이미 어느 정도의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어 교화(敎化)가 쉽지 않다. 진정으로 백 년 앞을 내다보는 교육을 생각한다면 유치원과 초·중등 교육을 획기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더 이상 유치원을, 맞벌이 부부가 잠시 아이를 맡기는 곳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최근에 불거진 사립 유치원 사태 이후 몇 가지 법안이 발의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안 되고,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최고의 인격을 갖춘 훌륭한 인사가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원이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20대의 젊은 교사가 아닌, 풍부하게 인생을 경험한 중후한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대학교수는 인격보다 전문 지식을 가졌느냐의 여부가 더 중요하다. 현역 국회의원으로 있는 어느 인사가 과거 교육부 장관 시절에 나이 많은 교사를 죄인 취급하듯 퇴직시킨 일이 있었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한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각급 학교 교원의 임금 체계를 크게 바꾸어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원을 가장 우대하고 그 다음으로 중·고등학교 교원, 그 다음으로 대학교수 순서로 하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정말 훌륭한 교사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모이지 않을까? 교직 경험이 전혀 없는 유은혜 장관이 과연 이러한 교육 문제를 제대로 풀어 갈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