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과거사 정리로 본 5·18의 과제] <3> 군·경에 민간인 1300명 희생 … 이념 대립이 낳은 비극
6·25 전후 3년간 군유산지역 빨치산 토벌 작전 때 무차별 학살
2007·2009년 과거사 정리위서 조사…400여명 죽음 규명 안돼
유족회 사료집 등 진실 알리기 노력 … “과거사 정리법 통과 돼야”
국내외 과거사 정리로 본
5·18의 과제
<3> 함평 양민 학살사건
2018년 08월 29일(수) 00:00

(사)함평사건희생자유족회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을 기리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매년 열고 있는 합동위령제.

월야면 월야리 함평양민학살희생자합동위령비.








함평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양민학살 표지석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이야 ‘나비의 고장’으로 유명하지만 함평군은 한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손꼽힐 만한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함평양민학살사건은 1948년 10월 22일부터 1951년 7월 10일까지 약 3년간 함평읍·손불·신광·대동·나산·해보·월야·엄다면 등에서 토벌작전을 수행하던 전라남도경찰국 기동대, 함평·영광경찰서 기동대, 국군에 의해 민간인 1300여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국가에 의해 은폐되다 지난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와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두차례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때 진상이 규명된 898명 이외에도 아직 400여명에 대한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사)함평사건희생자유족회(이하 유족회)는 국회에 계류 중인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정리법) 개정안이 하루 빨리 통과돼 희생자 진상규명과 보상이 속히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좌·우 이념 대립이 낳은 비극 =함평양민학살사건은 크게 ▲전쟁 전 피해 ▲국민보도연맹사건 ▲국군 11사단 사건 ▲경찰토벌 피해 등 네가지로 구분된다.

‘전쟁 전 피해’는 해방 후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며 극심한 갈등을 빚은 상황에서 빨치산 토벌작전을 벌이던 국군이 빨치산을 도왔다는 이유로 민간인을 죽인 경우다. 1948년 10월 27일 함평군 신광면에 살고 있던 최병열씨를 시작으로 1949년 9월 22일까지 함평읍 진양리 신기·동하·양림·정창마을 주민 28명이 함평경찰서 소속 경찰유격대에 의해 양림마을 뒤 동산 선암정과 양림마을 앞 저수지 방죽 둑 비석거리에서 집단희생당했다.

‘국민보도연맹사건’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함평지역 국민보도연맹원 222명이 소집돼 당시 함평여자중학교 강당에 감금됐고 이중 200여명이 신안군 비금면 인근 바다나 학교면 죽정리 등에서 희생됐다.

함평 학살의 대부분은 국군 11사단에 의해 발생했다. 11사단 20연대 2대대와 3대대는 1950년 10월 22일부터 1951년 1월 14일까지 함평군 월야면, 해보면, 나산면, 광산군 본량면, 장성군 삼서면 인근에서 민간인 524명을 집단학살했다.

2대대 5중대에 의해 1950년 12월7일 하루에만 월야면 월야리 남산뫼에서 250여명이 죽었다.

함평에서는 경찰의 토벌작전에 의한 피해도 심각했다. 1950년 10월 국군 11사단 20연대 3대대의 토벌작전 이후 1951년 2월 19일 군유산 작전 때까지 월야·해보·나산면 등 동쪽 3개 면을 제외한 함평지역 치안을 경찰이 전담했다. 이 때 함평경찰은 전라남도경찰국 기동대 지원 아래 영광경찰서와 합동으로 경찰 150여명이 투입된 ‘군유산지역 토벌작전’을 펼쳤다. 당시 군유산에는 경찰 작전을 피해 피신하고 있던 민간인 수십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손불면 월천리에 살던 박윤휴씨 등 15명은 1951년 2월 22일 살해당했고, 북성리 이봉장씨는 2월 27일 손불지서에서 살해당했다. 또 손불면 산남리, 죽장리 주민들도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차례 진상조사와 보상=이미 두차례의 조사가 이뤄졌지만 함평 사건의 진상규명은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정근욱(69) 함평사건희생자유족회장은 “조사할 사람이 400명이나 남았지만 조사 기관 자체가 없어 막막한 상황이다”며 “다행히 문재인 정권은 지난 정권에 비해 과거사 정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과거사정리법의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에 따르면 ‘과거사 정리법’ 개정안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위원회 통과를 남겨 놓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 합의가 되지 않아 수년째 계류되고 있다. 정 회장은 개정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고 언론 광고 등 희생자 신고 접수를 전국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족회가 파악한 400명 이외에도 희생자는 더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보상 문제는 이번에 꼭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앞선 두차례 조사에서 각기 다른 기준이 적용되며 희생자 898명 중 150여명 만이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민법에서는 손해배생 청구권 시효를 3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규명된 희생자들은 희생된 시점(1950년 전후)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시효가 지났다. 이와 달리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규명된 희생자들은 사실이 규명된 시점을 기준으로 잡아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유족들은 이번 과거사정리법 개정안에 보상에 대한 내용도 포함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족들은 보상에 대해서 액수를 떠나 국가에게 사죄를 받는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유족들의 진실 알리기 노력=유족회는 지난 2004년 월야면 남산뫼에 함평양민학살희생자합동위령비를 세운데 이어 집단학살장소 표지석을 2005년과 2013년 두차례에 걸쳐 17개 세웠다.

또 남산뫼 인근에는 1950년 12월2일 월야면 정산리 전투에서 전사한 국군 2명(김영광·김추길)의 전사비도 설치해 ‘화해와 용서’의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2009년부터 2016년까지는 ‘함평집단학살희생자명예회복 사료집’(전 8권)을 출간, 전국에 배포하며 함평사건을 알리고 있다.

또한 1993년부터는 매년 월야초등학교에서 합동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용희 기자 kimyh@

/사진=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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