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시간속을 걷다 ]<2> 목포 금화어상자
2017년 02월 02일(목) 00:00 가가
어부의 꿈을 담는다 … ‘바다의 목수’ 오늘도 탁! 탁!
목포는 항구다. 개항(開港)한 지 120년이 됐다. 목포항 국제 여객터미널에서 목포수협 직판매장으로 이어지는 해안로를 따라 걷다보면 나무상자들이 수레 위에 가지런하면서도 겹겹이 쌓여있다. 조기와 갈치와 같은 생선을 담는 ‘어(魚)상자’이다.
박종연 금화어상자 대표는 ‘바다의 목수’이다. 올해로 여든세 살인 그는 32년째 어상자를 짜고 있다. 바다와 인접한 땅에서, 바다의 산물을 담는 어상자를 묵묵히 만들며 한길을 걸어오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최고참’이다.
◇농사꾼·월급쟁이서 나무상자 제작자로=“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목포로 나왔다. 요것조것 조금씩 해봤지만 ‘월급만 타 가지고는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아’ 어상자를 시작하게 됐다.”
박 대표 고향은 진도군 조도이다. 32살 때 자식교육에 대한 열망을 가슴에 품고 목포땅을 밟았다. 사무직 등 여러 직업을 거쳐 지천명(知天命)이 지난 나이에 어상자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80년대 중반은 (고기가 많이 잡혀) 어상자 제작이 괜찮았다. 자식을 가르쳐 볼까하다 이 직업을 못 바꿨다.” 남의 땅을 빌려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다 현재 서산동 자리에서 20여 년 동안 어상자를 만들고 있다. ‘가장 천하게 생각되고, 지금도 부끄럽다’고 말한다. 그래도 어상자를 만들면서 6남매(1남5녀)를 다 키웠다며 활짝 웃었다. 주름지고, 거친 두 손에 박 대표의 지난 인생이 그대로 담겨있는 듯하다.
박 대표가 만드는 것은 어상자와 ‘동백화’(김장때 젓새우 담는 상자), ‘와꾸’(얼음을 채우는 틀, 덮개) 등 3종류. 산에 흔한 소나무를 켠 판자로 만든다. 어상자 규격은 길이 59㎝×넓이 35㎝×높이 8㎝이다. 얼음 틀은 어상자보다 다소 작다. 어상자 위에 끼운 후 얼음을 채워 생선들이 상하지 않도록 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어상자를 만드는 소나무 판재는 목재소에서 규격에 맞게 잘라서 가져온다. 우선 ㅁ자 사각 틀을 만든 후 판자 네 쪽으로 바닥을 이어붙인다. 과거에는 망치를 써서 못질을 했으나 지금은 에어 컴프레서(압축기)에 연결해 공기압으로 작동하는 ‘타카 총’(air tacker)을 사용한다. 총을 쏘듯 방아쇠를 당기면 문구 ‘스테이플러’와 닮은 ㄷ꼴 연결 쇠가 단단하게 나무에 결합된다. 탁, 탁, 탁… 몇 차례 경쾌한 소리와 함께 어상자 한 개가 ‘뚝딱’ 완성된다.
◇플라스틱 어상자 도입으로 위기 맞아=“잘 나갈 때는 직원 2∼3명을 두고 하루 1000개를 만들었다. 3년 전 까지는 괜찮았다. 그때는 고기도 많이 잡혔다. 지금은 그때보다 3분의 1도 안 나간다. 요즘 혼자서 어상자를 하루 400개 만든다.”
지난 2014년께부터 나무 어상자 사용이 줄어든 까닭은 해양수산부가 ‘위판장 현대화사업’의 하나로 플라스틱 재질의 개량 어상자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어선의 남획으로 어획량마저 감소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목포와 영광 법성포에서만 플라스틱 어상자를 사용하고 있다. 선주가 1350원을 부담하고, 국가에서 비용 일부(850원)를 지원해주며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그동안 목포의 경우 박 대표를 비롯한 6개 업체가 나무 어상자 제작을 해왔다. 그러나 플라스틱 어상자 도입 이후 나무 어상자 주문이 줄어들며 수지가 맞지 않아 2곳이 문을 닫아 현재 4곳만 운영되고 있다.
“플라스틱 어상자는 한번 생선을 담으면 무조건 버려야 한다. 재활용을 못 하도록 정부에서 금해버렸다. 그런데 버릴 데도 없다. 인건비도 안 나오는데 누가 고물상에 가져가겠는가? 그래서 사방에 (플라스틱 어상자가) 굴러다닌다.” 박 대표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박 대표는 나무 어상자 장점으로 2∼3번 사용하고 불쏘시개로도 쓸 수 있고, 생선도 변질되지 않고, 고기를 담아서 냉동을 해도 물이 잘 빠진다는 점을 꼽았다. 반면 플라스틱 어상자는 냉동고에 넣을 수도 없다. 미끄러지고, 깨지기 때문에 나무로 된 어상자에 옮겨 담아야 하는 등 이중으로 불편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재활용이 안 돼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는 등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부산과 인천, 여수 등지에서는 불편한 플라스틱 대신 기존의 나무 어상자를 다시 사용하고 있다.
박 대표는 선주들이 나무 어상자를 주문하면 수레에 200개씩 실어 직접 가져다준다.
“지금 선주들은 어상자 대금을 잘 주지만 옛날 선주들은 돈을 많이 떼먹었다. 오래전 500만원 이상 떼먹은 이에게 돈을 받으러 갔다가 그의 어려운 살림 꼴을 보고 되려 담배를 사주고 돌아선 적도 있다.”
◇풍어(豊漁) 꿈꾸는 ‘바다의 목수’=나무 어상자 한 개 가격은 1500원 수준. 요사이 매달 지출되는 나무 재료 값과 지게차 비용, 전기세, 땅세를 감안하면 가슴속이 답답하다. 32년째 목포 바닷가에서 어상자를 묵묵히 만들어온 박 대표는 목포항 120년 역사와 목포수산업 발전사(史)를 채우는 소중한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요즘 어상자 주문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하지 않고 새벽 4시30분∼5시면 작업장에 나온다. 30여 년을 거르지않고 반복해온 생활습관이다. 어상자 주문이 밀릴 때는 한 개라도 많이 짜야 하기 때문에 밤에도 작업을 했다.
팔순을 넘긴 박 대표의 새해 소망은 뭘까? “주위에서 ‘이제 그만 하쇼’라고 말한다. 되든, 안되든 계속 (어상자를) 만들겠다. 바다에 고기가 없다. 중국 배가 ‘싸그리’(하나도 남김없이) 잡아간다. 선주(船主)들이 잘돼야 (어상자를 만드는) 우리가 잘되는 것이다. 고기가 많이 잡혀 나무 어상자가 많이 쓰였으면 좋겠다.”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농사꾼·월급쟁이서 나무상자 제작자로=“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목포로 나왔다. 요것조것 조금씩 해봤지만 ‘월급만 타 가지고는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아’ 어상자를 시작하게 됐다.”
박 대표 고향은 진도군 조도이다. 32살 때 자식교육에 대한 열망을 가슴에 품고 목포땅을 밟았다. 사무직 등 여러 직업을 거쳐 지천명(知天命)이 지난 나이에 어상자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어상자를 만드는 소나무 판재는 목재소에서 규격에 맞게 잘라서 가져온다. 우선 ㅁ자 사각 틀을 만든 후 판자 네 쪽으로 바닥을 이어붙인다. 과거에는 망치를 써서 못질을 했으나 지금은 에어 컴프레서(압축기)에 연결해 공기압으로 작동하는 ‘타카 총’(air tacker)을 사용한다. 총을 쏘듯 방아쇠를 당기면 문구 ‘스테이플러’와 닮은 ㄷ꼴 연결 쇠가 단단하게 나무에 결합된다. 탁, 탁, 탁… 몇 차례 경쾌한 소리와 함께 어상자 한 개가 ‘뚝딱’ 완성된다.
◇플라스틱 어상자 도입으로 위기 맞아=“잘 나갈 때는 직원 2∼3명을 두고 하루 1000개를 만들었다. 3년 전 까지는 괜찮았다. 그때는 고기도 많이 잡혔다. 지금은 그때보다 3분의 1도 안 나간다. 요즘 혼자서 어상자를 하루 400개 만든다.”
지난 2014년께부터 나무 어상자 사용이 줄어든 까닭은 해양수산부가 ‘위판장 현대화사업’의 하나로 플라스틱 재질의 개량 어상자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어선의 남획으로 어획량마저 감소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목포와 영광 법성포에서만 플라스틱 어상자를 사용하고 있다. 선주가 1350원을 부담하고, 국가에서 비용 일부(850원)를 지원해주며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그동안 목포의 경우 박 대표를 비롯한 6개 업체가 나무 어상자 제작을 해왔다. 그러나 플라스틱 어상자 도입 이후 나무 어상자 주문이 줄어들며 수지가 맞지 않아 2곳이 문을 닫아 현재 4곳만 운영되고 있다.
“플라스틱 어상자는 한번 생선을 담으면 무조건 버려야 한다. 재활용을 못 하도록 정부에서 금해버렸다. 그런데 버릴 데도 없다. 인건비도 안 나오는데 누가 고물상에 가져가겠는가? 그래서 사방에 (플라스틱 어상자가) 굴러다닌다.” 박 대표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박 대표는 나무 어상자 장점으로 2∼3번 사용하고 불쏘시개로도 쓸 수 있고, 생선도 변질되지 않고, 고기를 담아서 냉동을 해도 물이 잘 빠진다는 점을 꼽았다. 반면 플라스틱 어상자는 냉동고에 넣을 수도 없다. 미끄러지고, 깨지기 때문에 나무로 된 어상자에 옮겨 담아야 하는 등 이중으로 불편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재활용이 안 돼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는 등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부산과 인천, 여수 등지에서는 불편한 플라스틱 대신 기존의 나무 어상자를 다시 사용하고 있다.
박 대표는 선주들이 나무 어상자를 주문하면 수레에 200개씩 실어 직접 가져다준다.
“지금 선주들은 어상자 대금을 잘 주지만 옛날 선주들은 돈을 많이 떼먹었다. 오래전 500만원 이상 떼먹은 이에게 돈을 받으러 갔다가 그의 어려운 살림 꼴을 보고 되려 담배를 사주고 돌아선 적도 있다.”
◇풍어(豊漁) 꿈꾸는 ‘바다의 목수’=나무 어상자 한 개 가격은 1500원 수준. 요사이 매달 지출되는 나무 재료 값과 지게차 비용, 전기세, 땅세를 감안하면 가슴속이 답답하다. 32년째 목포 바닷가에서 어상자를 묵묵히 만들어온 박 대표는 목포항 120년 역사와 목포수산업 발전사(史)를 채우는 소중한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요즘 어상자 주문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하지 않고 새벽 4시30분∼5시면 작업장에 나온다. 30여 년을 거르지않고 반복해온 생활습관이다. 어상자 주문이 밀릴 때는 한 개라도 많이 짜야 하기 때문에 밤에도 작업을 했다.
팔순을 넘긴 박 대표의 새해 소망은 뭘까? “주위에서 ‘이제 그만 하쇼’라고 말한다. 되든, 안되든 계속 (어상자를) 만들겠다. 바다에 고기가 없다. 중국 배가 ‘싸그리’(하나도 남김없이) 잡아간다. 선주(船主)들이 잘돼야 (어상자를 만드는) 우리가 잘되는 것이다. 고기가 많이 잡혀 나무 어상자가 많이 쓰였으면 좋겠다.”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