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환쟁이의 날개 없는 추락
2016년 05월 27일(금) 00:00
우리나라 언론 사상 최장수 칼럼 연재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생전에 그는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칼럼을 써 23년 동안 무려 6702회를 기록했다. 한때 월급의 3분의 1을 책값으로 지출했다는 그는 2만여 권의 책을 보유한 장서가이기도 했다.

그런 그도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마감시간(데드라인)은 다가오는데 아직 주제를 정하지 못한 날에는 정말 죽고 싶다”고까지 했다. 칼럼을 계속 쓰는 일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아는, 참으로 피를 말리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칼럼에 대한 사람들의 호불호(好不好)는 극도로 엇갈리지만, 그가 조수(비서)를 고용해 자료 정리를 시킨다는 소식을 언젠가 풍문으로 들은 적이 있다. 간접적으로 들은 바이니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되,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참 부러웠다. 비서가 챙겨 주는 모든 자료를 받아 적당히 짜깁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편하겠는가.

문득 그런 옛 기억이 떠오른 것은, 요즘 어떤 화가라는 사람이 조수를 시켜 그림을 그렸다가 들통이 나서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이 ‘미술계의 관행’이라 주장해 더욱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 화가가 조수를 시켜서 작업을 하면 과연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그의 창작물인 것일까?

물론 최고의 유명 화가들 중에도 조수를 기용하는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 ‘3대 천재 예술가’로 불리는 라파엘로가 그랬다. 그는 주로 그림의 아이디어를 내고 탁월한 실력을 갖춘 조수들에게 제작을 전적으로 위임했다.

더러 단독으로 제작한 것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조수가 만든 작품에 약간의 손질을 거쳐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명성은 하루가 다르게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 한창때 그의 아틀리에(atelier: 화실)는 50여 명의 조수와 제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라파엘로는 무뚝뚝한 미켈란젤로나 사회성이 떨어졌던 다빈치와 달리 성품이 싹싹한데다 외모도 잘생긴 ‘꽃미남’이어서, 교황 율리우스 2세 등 권력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덕분에 그는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호의를 거스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유능한 조수를 고용, 공동 작업이라는 묘책을 짜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그런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 이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 밑 작업대에 누운 채, ‘천지창조’의 완성을 위해 4년 동안 고통스럽게 붓질만 하던 미켈란젤로도 그랬다. 그때 라파엘로 역시 시스티나 성당의 다른 방에서 프레스코화(fresco畵:벽화)를 그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성당 복도에서 우연히 만났던 일화가 전해진다. 뒤에 조수들을 거느리고 걸어가던 라파엘로가 홀로 가던 미켈란젤로에게 말을 건넨다. “선생님은 늘 외로워 보이시는군요.” 그러자 얼굴을 잔뜩 찌푸린 미켈란젤로가 말한다. “자네는 항상 조수들을 데리고 다니는군. 마치 귀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야.” 홀로 천장 그림을 그리느라 목과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고생하면서도 특유의 장인정신을 발휘했던 미켈란젤로는, 젊은 라파엘로의 공동 작업이 여간 못마땅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얼마 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가수 조영남의 화투 그림을 본 적이 있다. 화투를 그림의 소재로 도입한 것은 아마도 그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가족’의 황영성, ‘빛’의 우제길, ‘잠자리’의 장영일, ‘물방울’의 김창열, ‘파꽃’의 최향. 이들 화가처럼 ‘화투’ 하면 조영남이 떠오를 날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그 자리에서 잠깐 해 봤다. 이때만 해도 그가 대작(代作) 시비에 휘말리기 훨씬 전이었으니, 노래에 그림 재능까지 가진 그가 부럽기만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 “웬만한 작가들은 다 조수를 쓴다”며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보니 적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들이 특히 설치미술을 하는 이들이 조수를 쓰는 것은 단순 반복 작업의 경우, 그것도 조수 옆에서 일일이 지시를 하며 일을 시키는 것이지, 멀리서 납품받아 살짝 덧칠하고 사인만 하는 것은 ‘관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술계에서는 조수를 말할 때 흔히 ‘어시스턴트’(assistant)를 줄여 ‘어시’라고 한다. 만화나 애니메이션(animation) 제작에 ‘어시’가 참여한다는 건 비교적 널리 알려졌다. 만화가가 밑그림을 그려 주면 색을 칠하고 명암을 입히는 것이다. 하지만 회화에서 조수에 의존하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아주 생소한 일이다.

외국에선 ‘자신이 직접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대놓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유명 작가도 있다고 한다. 예술의 순수성과 독창성을 일부러 조롱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미술 작가 중에는 그런 깊은 뜻도 없이, 조수가 작업한 작품을 수정 보완한 뒤 자신의 작품으로 내놓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 이런 사실이 드러나지 않고 묻히고 마는 것은 조수나 제자들이 절대 약자인 ‘을’(乙)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영남 씨는 어쩌다 운이 안 좋았던지 그물에 걸리고 말았다. 그의 죄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죄는 작품을 대신 그리게 했다는 사실보다는 그러한 사실을 말하지 않고 마치 자기가 그린 것처럼 작품을 팔아먹은 데 있다. 혹시 그는 “난 내가 직접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변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도록 만들었다.

말하지 않은 죄가 더 크다. 일찍이 정조 임금이 갈파하지 않았던가. “말하지 말아야 할 때에 말하는 것은 그 죄가 작지만(未可以言而言者 其罪小), 말해야 할 때에 말하지 않는 것은 그 죄가 크다(可以言而不言者 其罪大)”라고.〈‘홍재전서’〉

흔히 연예인을 낮잡아 딴따라로 부르듯이, 화가를 낮잡아서는 환쟁이라고 한다. 화가를 높여 이르는 말은 화백(畵伯)이다. 조영남 씨는 감히 화백을 꿈꾸지는 못한 대신 자신을 화가(畵家)와 가수(歌手)에서 한 자씩 따서 ‘화수’(畵手)라 자처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를 환쟁이와 딴따라를 합쳐 ‘환따라’라 부른다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돈에 혼이 팔린 나머지,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오로지 열정 하나만으로 작품을 만드는 이 땅의 많은 예술가들을 모독한 죄, 참으로 크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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