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는 풍광따라 ‘절로 느려지는 발걸음’
〈32 〉 청산도 슬로길 도청항∼권덕리 마을회관
구들장·다랭이 논 지나 돌담길, 해안길 거쳐 마을길
100리 11개 코스 … 지루할 틈 없는 ‘세계 슬로길 1호’
2011년 08월 29일(월) 00:00

청산도 ‘슬로 길’ 1코스인 청산면 도락리 마을에서 영화 ‘서편제’ 길로 오르는 ‘동구정 길’ 전경, 길 주변으로 코스모스가 하나 둘씩 꽃을 피우고 있다. /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여름 끝, 가을 문턱의 바다 바람은 차가웠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 때문인지 가을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휴가기간이 끝나서인지 여름철 시끌벅적했던 해변은 적막했다. 그래서인지 완도항에서 떠나는 청산도행 철부선도 예전처럼 북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100여 명의 관광객이 철부선에 몸을 실었다.

‘슬로 시티’(Slow City)로 인기몰이를 해 온 청산도가 최근에는 ‘슬로(Slow) 길’로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걸음이 절로 느려진다는 뜻을 가진 ‘슬로 길’은 현재 11개 코스(17길) 100리 (42.195km)가 만들어졌다. 주민들의 마을 간 이동로로 이용되던 길을 최근 완도군이 정비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국제슬로시티연맹 세계 슬로길 1호로 공식 인증된 길이기도 하다.

‘슬로 길’에는 섬의 풍경과 정취, 사람 사는 이야기가 흠뻑 담겨있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청산도에서만 볼 수 있는 구들장 논과 다랭이 논, 돌담길, 초분(草墳·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일정 기간 짚으로 만든 가묘(假墓)에 장례 하는 장례법)은 물론 바닷가와 마을 길을 에둘러 돌기 때문에 다른 바닷길과 달리 지루하지 않다.

다만, 거리가 100리가 가까이 되다 보니 하루에 모두 걷기는 벅차다.

1박2일 정도 일정이면 청산도의 숨겨진 비경을 둘러볼 수 있다. 하지만, 11개 코스 모두 걸을 필요 없이 경치가 가장 좋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 1∼5 코스를 걷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1 코스는 완도에서 출발한 배가 청산도 입구인 도청 항에 닿으면 시작된다. 슬로 길에서 가장 명품이라 할 수 있는 풍경들이 널렸다. 부둣가를 따라 도락리 마을로 들어서면 골목 곳곳 돌담 벽에는 사진들이 걸려있다. 옛날 이곳 학교의 졸업 사진이다. 소박하지만, 따뜻함이 묻어있다. 마을 길 주변에는 누렇게 익어갈 벼들이 시꺼멓게 타 고개를 처박고 있다. 태풍 ‘무위파’로 염해 피해를 입어서다.

영화 ‘서편제’ 길인 당리 입구에서 바라 본 도락리 전경. 서편제 길로 오르는 길이 도락리로 길게 이어져 있다.


마을 길을 가로 질러 오르막 길을 오르면 한국 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다. 주인공 세 사람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구불구불한 돌담길을 걷는 명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돌담길 끝에는 유럽풍의 집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드라마 몸의 왈츠 세트장이다. 돌담길 주변으로는 코스모스가 가을을 재촉하며 하나 둘씩 얼굴을 내밀며 길손들을 반기고 있다. 봄에는 유채꽃과 청보리가 이곳에 가득 피어나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곤 한다. 돌담길에서 내려다보는 도락리 해변은 인상적이다. 층층이 쌓인 밭과 섬을 품은 너른 바다가 분홍빛 코스모스가 조화를 이루면서 장관을 이룬다. 2 코스는 당리에서 구장리를 잇는 2.1km의 짧은 길이다. 하지만, 숲의 고즈넉함과 해안 절경의 운치를 즐길 수 있다. 해안 사면길이지만, 산행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간간이 눈에 들어오는 바다 풍경이 더욱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3 코스는 마을 길로 향한다. 당리마을로 들어서면 돌담 골목 안에 영화 서편제 촬영가옥이 나온다. 골목은 오르막을 올라 청진산성으로 안내한다. 성곽을 따라 다시 내려가도록 길이 이어진다. 성곽에선 읍리의 계단식 논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구들장 논이라고 한다. 섬이 탓에 논과 밭이 부족해 주민들이 산을 깎아 바닥에 구들처럼 돌을 깔고 그 위에 흙을 부어 만든 논이다. 주민들의 땀과 노력이 만들어 낸 논인 셈이다. 마을 중심부에는 고인돌 공원도 있다. 그래서 3 코스는 고인돌 길로 불린다. 이 코스는 산성, 고인돌 공원 등 청산도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마을을 관통해 나오면 읍리 해변 방파제가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4 코스 낭길이 시작된다. 구정리에서 권덕리까지 이어진 낭떠러지 길이다. 해안 절벽을 따라 길이 나 있어 하늘에 떠 있는 듯, 바다에 떠 있는 듯한 느낌으로 길을 걸을 수 있다.

소나무 숲과 해안길을 동시에 걸을 수 있어 재미가 더 한다.

/최권일기자 ck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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