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오래돼 불편하지만 공원 있어 위안”
2011년 02월 12일(토) 00:00 가가
③ 계림동 두산위브∼조선대 정문
재개발 지지부진 노후주택 곳곳 방치
노인들 많이 찾아 "시설관리 신경을"
재개발 지지부진 노후주택 곳곳 방치
노인들 많이 찾아 "시설관리 신경을"
계림동에 우뚝 솟은 재개발 아파트는 단독주택, 높으면 2∼3층의 노후 건물 등 주변 경관과 큰 차이를 보인다. 계림동 일대가 일제시대에서 60·70년대에 걸쳐 지어진 건물들로 수차례 보수를 거친 노후주택들로 구성돼 있는데 지난 2007년 광주 최초의 재개발사업을 통해 반듯한 19층 아파트단지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계림동 일대 재개발사업은 지지부진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있다. 시간이 갈수록 주민들의 ‘열의’는 높아지지만 정작 개발에 나서야할 민간사업자는 ‘경제성’을 이유로 더 이상의 사업 추진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득으로 거주지를 개량할 수 없는 주민들은 그때 그때 비닐이나 폐타이어 등을 이용하는 등 임시방편을 하며 살고 있다. 아예 빈집으로 방치되고 있는 있는 곳도 눈에 띤다. ‘특별한’ 아파트를 지나면 푸른길공원보다 높은 위치에 자리한 단독주택지로 이어지고 있다.
왼편으로는 과거와 같은 덜 다듬어진 녹지, 오른편에는 높은 지대의 주택지 골목길이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전남대병원을 찾은 뒤 귀가하던 신모(여·57)씨는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 걸어가는 게 더 편하다”며 “집에 너무 오래돼 살기에 불편하지 그 외에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살기 좋다”고 동네 예찬론을 폈다.
설 명절을 앞둔 추운 날씨에도 운동을 하거나 목적지를 가거나, 또는 통나무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공원의 주인공이 되고 있었다. 공원 바로 옆에는 빨래가 널려 있고, 닭들이 노니는 등 이 일대가 광주시내라는 것조차 인식할 수 없는 길이 계속 이어졌다. 푸른길공원이 이 인근에 중요한 자원이 되고, 인근 동네 주민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감을 갖게 됐다는 의미일 것이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지나자 산수동굴다리 옛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반겼다.
산수동에서 50년을 살았다는 정모(65)씨는 “기차가 다닐 때만 해도 이 굴다리가 동네를 나누는 기준이 되고, 동네를 연결해주는 다리가 됐다”며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야기하고 정을 나누던 곳”이라고 정의했다. 과거 기차는 이 ‘광장’을 거쳐 농장다리 밑을 관통했을 것이다. 농장다리에 대해 조광철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사는 “일제시대 동구 동명동에서 지산동으로 넘어가는, 옛 경전선 철길 위로 놓인 다리”라고 말한다. 그는 “예전에 동명동 200번지 일대에 형무소가 있었고 이 다리 너머 지산동에 형무소농장이 있었을 무렵, 수감자들이 다리를 넘나들며 노역을 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풀이했다.
농장다리 밑에는 1930년대부터 기차와 관련 사진 6장이 전시돼 가끔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고 있다. 그 이상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한 채 장식물처럼 걸려 있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자체로 반가웠다. 이 농장다리 밑을 지나면서 길의 양편에 다시 단독주택들이 죽 늘어서 있다. 또 그 사이 사이엔 더 깊숙이 옛 정취 그대로의 골목길들도 볼 수 있다.
공원에 나와 오랜만에 ‘햇볕 쐬기’를 즐기던 임하택(77) 할아버지는 “주변에 온통 노인들밖에 없는데 공원에 들어서는 시설들이 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며 “디자인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이용자 편의, 이후 관리 등도 설치 전에 미리 검토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임 할아버지가 문제를 제기한 것은 다름 아닌 쉼터였다. 이 쉼터에 처마가 없어 비가 오거나 더운 날씨에는 이용하기 불편하게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재잘거리며 걷던 10대 소녀들도 만났다.
올해 조대여고에 진학한 양수빈(17)양 등 3명은 “푸른길공원을 통해 시내 어디로든 다 갈 수 있어 친구들과 자주 걷는다”며 “겨울철에는 가동이 안 되지만 여름에는 분수가 참 멋있다”고 미소지었다.
이곳을 지나면 도로의 소음과 부딪힌다. 이는 푸른길공원 왼편이 제1순환도로인 필문로와 접하면서 지나는 사람도, 차량도 함께 늘어나 아늑했던 분위기가 일순 바뀌는 신호와도 같다. 버스정류장에는 언제나 그렇듯 대학생들이, 푸른길에는 운동에 여념이 있는 노인과 주부, 인도는 사람과 자전거 등이 대부분을 점하고 있다. 단독주택들도 없어지고 대학생들을 위한 주점이나 카페 등이 대신하고 있다.
모자에 장갑으로 중무장하고 한 손에 라디오를 든 윤판섭(70) 할아버지는 “오전과 오후 2시간씩 집과 푸른길을 오간다”며 “자전거가 너무 다녀 걷는 사람들이 불편하니 이에 대한 대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푸른길공원은 이미 그 주변에 사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공원으로 인해 혜택을 입고 있는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조선대 정문을 지나며 공원은 필문로를 따라 전남대병원, 다시 대남로로 이어져 남광주역과 광주천을 거쳐간다.
/윤현석기자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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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진이 걸려 있는 농장다리 밑 |
산수동에서 50년을 살았다는 정모(65)씨는 “기차가 다닐 때만 해도 이 굴다리가 동네를 나누는 기준이 되고, 동네를 연결해주는 다리가 됐다”며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야기하고 정을 나누던 곳”이라고 정의했다. 과거 기차는 이 ‘광장’을 거쳐 농장다리 밑을 관통했을 것이다. 농장다리에 대해 조광철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사는 “일제시대 동구 동명동에서 지산동으로 넘어가는, 옛 경전선 철길 위로 놓인 다리”라고 말한다. 그는 “예전에 동명동 200번지 일대에 형무소가 있었고 이 다리 너머 지산동에 형무소농장이 있었을 무렵, 수감자들이 다리를 넘나들며 노역을 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풀이했다.
농장다리 밑에는 1930년대부터 기차와 관련 사진 6장이 전시돼 가끔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고 있다. 그 이상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한 채 장식물처럼 걸려 있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자체로 반가웠다. 이 농장다리 밑을 지나면서 길의 양편에 다시 단독주택들이 죽 늘어서 있다. 또 그 사이 사이엔 더 깊숙이 옛 정취 그대로의 골목길들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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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길공원에서 만난 닭 가족 |
공원에 나와 오랜만에 ‘햇볕 쐬기’를 즐기던 임하택(77) 할아버지는 “주변에 온통 노인들밖에 없는데 공원에 들어서는 시설들이 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며 “디자인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이용자 편의, 이후 관리 등도 설치 전에 미리 검토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임 할아버지가 문제를 제기한 것은 다름 아닌 쉼터였다. 이 쉼터에 처마가 없어 비가 오거나 더운 날씨에는 이용하기 불편하게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재잘거리며 걷던 10대 소녀들도 만났다.
올해 조대여고에 진학한 양수빈(17)양 등 3명은 “푸른길공원을 통해 시내 어디로든 다 갈 수 있어 친구들과 자주 걷는다”며 “겨울철에는 가동이 안 되지만 여름에는 분수가 참 멋있다”고 미소지었다.
이곳을 지나면 도로의 소음과 부딪힌다. 이는 푸른길공원 왼편이 제1순환도로인 필문로와 접하면서 지나는 사람도, 차량도 함께 늘어나 아늑했던 분위기가 일순 바뀌는 신호와도 같다. 버스정류장에는 언제나 그렇듯 대학생들이, 푸른길에는 운동에 여념이 있는 노인과 주부, 인도는 사람과 자전거 등이 대부분을 점하고 있다. 단독주택들도 없어지고 대학생들을 위한 주점이나 카페 등이 대신하고 있다.
모자에 장갑으로 중무장하고 한 손에 라디오를 든 윤판섭(70) 할아버지는 “오전과 오후 2시간씩 집과 푸른길을 오간다”며 “자전거가 너무 다녀 걷는 사람들이 불편하니 이에 대한 대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푸른길공원은 이미 그 주변에 사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공원으로 인해 혜택을 입고 있는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조선대 정문을 지나며 공원은 필문로를 따라 전남대병원, 다시 대남로로 이어져 남광주역과 광주천을 거쳐간다.
/윤현석기자 chad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