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취약·인권침해 반복…이주노동자 “전남 안 살래요”
2025년 07월 28일(월) 19:30
안정적인 정착 지원하는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 시행에도 농어촌 외면
전남 올 386명 배정에 비자 발급 19명 그쳐…공모 선정 6개 군은 ‘전무’
근무·거주여건 열악하고 사회적 고립감에 업종도 제한…장기 정착 꺼려

/클립아트코리아

정부가 인구유입·지역 회생을 목표로 외국인노동자의 안정적인 정착을 지원하는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정작 전남 농어촌에서는 외면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심에 비해 인프라 부족 등 근무·거주 여건이 열악한 상황에서, 나주 벽돌 공장 외국인노동자 인권침해 사건<광주일보 7월24일 7면> 등 후진적 작업장 문화가 여전하고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인식도 남아있다보니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지역에서 정착하기를 꺼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28일 전남도에 따르면 도는 2023년 시범사업을 거쳐 2024년부터 ‘지역특화형 비자사업’을 본격 실시했으나, 지난해 6개 지역(영암·해남·고흥·장흥·곡성·보성)에 배정된 425명 중 지역우수인재 비자 로 전환된 외국인 노동자는 72명(16.9%)에 불과했다. 장흥의 경우 30명의 비자인원을 배정받았음에도 해당 비자 신청 외국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지난해 전국 10개 광역지자체 비자 배정인원 3291명 중 실제 비자 취득 외국인이 1612명(49.0%)에 달했던 것에 비해서도 적은 비율이다.

법무부는 지난 2022년부터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을 통해 전국 89개 인구감소지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특별 비자를 발급해 주고 있다. 최소 2년에서 5년까지 실거주·장기 체류하는 것을 조건으로 외국인 노동자에 지역우수인재(F-2-R), 외국국적동포(F-4-R), 지역특화 숙련기능인력(E-7-4R) 비자를 발급해주고 비자 취득, 체류 허가 요건을 완화해 숙련된 외국인 인력을 확보하겠다는 게 사업 목표다.

특히 지역우수인재 비자는 비전문취업(E-9, 체류기간 최장 3년), 방문취업(H-2, 3년) 등에 비해 장기간 체류가 가능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고, 조건에 따라 거주(F-2) 비자로 변경하는 것도 가능하다. 농가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노동력과 숙련도를 가진 외국인 노동자를 유치할 수 있어 각광받는 사업이다.

전남도는 올해도 지난 2월부터 사업 신청자를 모집 중이지만, 전남 10개 지역(곡성·고흥·화순·장흥·강진·해남·영암·영광·장성·진도)에 배정된 386명 중 단 19명(4.9%)만이 비자를 발급받는 데 그쳤다. 곡성·장흥·강진·해남·영광·진도에서는 비자가 전환된 외국인 노동자가 없었다.

전남에서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해당 사업이 현실에서 외면받는 이유로 근무·거주 여건의 열악함, 사회적 고립감 등을 꼽고 있다. 전남 지역에는 농사, 제조업 등 업종이 제한돼 있는데다 임금도 넉넉지 않아 타 지역으로 떠나는 편이 낫다는 의견을 보이는 외국인 노동자도 있었다.

10년 전부터 영암군에서 일해 온 네팔 국적 A(37)씨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근무·거주 조건이 열악하고 사회적 고립감이 큰 전남 등 인구감소지역에서 장기 정착하는 것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며 “전남에는 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사무직 자리가 많지 않다. 직업과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역정착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캄보디아 출신 상담원 B(여·40)씨는 “전남과 같은 농어촌·지방 소도시에서는 특별 비자를 받기 위한 급여(1인당 국민 총소득의 70% 이상)를 주는 회사를 찾기 어렵다”며 “더구나 근무 도중 해고되는 일도 잦다 보니 ‘신청일 기준 3개월 이내 근로 개시 및 고용, 계약기간 1년 이상’ 조건도 맞추기 어려워 전남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나주 벽돌공장 인권침해 사건뿐 아니라 영암 돼지농가 네팔 노동자 사망사건 등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 침해와 부당한 대우가 잇따르는 점도 정착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전남노동권익센터가 지난해 전남 지역 외국인노동자 1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4년 전남이주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42.6%가 근무 중 사장이나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7명(67.9%)은 언어폭력을 경험했으며, 41.5%는 ‘월급’으로 차별을 받았다고 답했다.

근무 중 폭언이나 폭행을 당했을 때는 64.6%가‘그냥 참고 넘어간다’고 답했으며, 부당대우에 대처했다가 오히려 자신이 욕을 먹거나 불이익을 받았다는 응답도 33.3%였다. 산업재해 발생 시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응답도 50.1%였다.

손상용 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주거, 산재, 인권 탄압 등 계절이주노동자에게서 발생하는 문제가 지역특화 이주노동자사업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며 “고용주 인권 교육을 비롯해 그들이 정착할 수 있는 환경조차 제대로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단기 인력 수급에만 초점을 맞추니 외국인 노동자들이 외면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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