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모티브로 다양한 존재와 관계에 의미 부여
2025년 05월 22일(목) 20:00
머문 날들이 많았다-박현우 지음
언어예술은 시간예술이다. 언어의 본질 가운데 하나가 시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지면에 활자화된 언어는 시공간을 초월해 독자들과 소통한다는 데 묘미가 있다.

박현우 시인이 최근 펴낸 시집 ‘머문 날들이 많았다’에는 시간 인식이 투영된 작품들이 다수 수록돼 있다.

맹문재 평론가(안양대 교수)의 “시인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이나 상황을 시간 인식으로 반영한다”는 표현처럼, 이번 시집은 시간을 연계로 존재들의 관계에 의미를 부여한다.

진도 출신인 시인은 조선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오랫동안 재직했다. 참교육운동을 하던 1989년 ‘풀빛도 물빛도 하나로 만나’라는 제목의 부부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그러다 30년 만인 2020년 ‘달이 따라오더니 내 등을 두드리곤 했다’를 발간하면서 다시 창작의 자리로 돌아왔다. 얼마 전에는 ‘멀어지는 것들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라는 제목의 시집을 펴내고 창작에 진력하고 있다.

오랫동안 창작에 목말라 있던 시인은 마치 갈증을 달래듯 시에 몰두하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인물의 행위, 상황을 시간이라는 스펙트럼 속에서 응시하며, 위로와 연대의 의미를 전한다.

“노친네 세 분이/ 버스 정류장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함께한 육십 노인 처지를 묻는데// 긍께라,/ 울 엄매도 아흔이 훌쩍 넘었는디/ 삼십 줄에 홀로 돼 쌩고생하는 게 짠해서/ 어찌어찌 함께하다 보니/ 이젠 온 삭신도 쑤시고// 그랴,/ 자석인께 차마 눈 돌리지 못하고/ 으메, 어쩌겄어 고상은 했네마는/ 아적은 자네, 꽃인께로/ 얼른 보내부러야 쓰겄구만// 쯔쯧.”(‘아적은 꽃’ 전문)

노인들 셋의 대화를 한 편의 시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아흔이 넘은 어머니를 홀로 모시고 사는 노인의 안쓰러운 처지를 전라도 사투리로 구성지게 풀어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자네’는 오늘의 시골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시어다. “아적은 자네, 꽃인께”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애잔함을 드러내는 한편 오늘의 농촌 현실을 에둘러 꼬집는다.

시에서 특유의 리듬감이 느껴지는 것은 박 시인의 고향이 진도라는 점과 연관돼 있다. 진도 육자배기 가락 같은 어조는 그의 시가 지닌 미덕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은 그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삶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한편 맹문재 평론가는 “시인은 시간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입체적으로 구성해 현실을 인식하는 거울이나 미래를 지향하는 푯대로 삼는다”고 평한다.

<푸른사상·1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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