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일상으로 - 박광범(가명) 의대생 아들을 둔 아버지
2025년 03월 28일(금) 12:00

/클립아트코리아

지난 24일 밤,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 ‘보내기’ 버튼만 누르면 될 수 있도록 준비해놓고 몇 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의 마음이 바뀌면 바로 복학 신청을 하려고 말이죠.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려 보내겠다는 간절한 소망 그 한 가지를 붙들고 말이죠. 그러나지난 일 년 동안 아이는 식당 서빙 과외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기다렸습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원룸비를 대면서 말이죠. 사회생활을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며 참고 기다렸습니다. 지금 아이는 지쳤고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럼 복학하면 되잖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돌아가도 함께 할 친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습할 동료, 팀 교육 등 의대 교육 특성상 함께 할 동료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함께 돌아가자 용기 내어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대로 돌아가면 어떤 미래가 자신들에게 닥칠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친구들을 설득할 만한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의대생 자신들의 휴학이 온전히 정의로운 건 아니라는 것을, 자신들의 행동이 합리적 행동이 아니라는 것도요. 저희 어른 세대보다 10배나 똑똑하니까요. 단지 경험이 부족할 뿐이지요. 그럼 우리 어른들은 온전히 옳고 정의롭고 지혜로운가요? 정말 옳고 정의롭고 지혜로웠다면 지금의사태가 일어났을까요? 저는 20대일 때 아버지의 나이가 되면 정말 지혜롭고 모든 일을 옳게 처리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보니 저는 여전히 편협하고 간사할뿐만 아니라 겁쟁이라는 것을 압니다. 감정적이며 지혜롭지도 않습니다.

대한의사협회에 묻고 싶습니다. 의대생과 전공의의 투쟁을 협상의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은 저의 편협한 생각입니까? 전공의와 학생들은 할만큼 했다. 선배들이 발 벗고 노력할 때니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한마디를 왜 하지 않습니까. 몇몇 똑똑하다는 그 서울의대 교수들은 자신들의 선한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꺼낸 언어가 후배 학생들과 전공의 비난이었습니다. 정말 그 비난이 옳은 주장인가요? 그렇게 주장해서 얻은 게 무엇인가요? 총장 어른은 학칙으로, 장차관들은 법을 들먹이며 아이들을 겁박해 왔습니다. 하다하다 뜻대로 되지 않으니 대통령은 계엄령으로 처단까지 하겠다고까지 했습니다. 이런 게 지혜롭고 정의로운가요? 이게 우리 어른들 모습이며 버르장머리입니다. 지금의 의료사태로 적게 잡아 연 3조7000억원의 손실이 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하는 어른들은 구걸하느라 해결책은 뒷방에 처박아 놓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지금의 사태로 내몬 당사자가 아이들입니까? 선배 의사, 의대 교수, 의료정책 당국자, 교육정책 당국자. 바로 어른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잘못했어도 잘못했다. 미안하다 말하는 어른 한 명 없습니다. 백번 양보해 한 사람 객기와 무지의 결과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과하지 않아도 됩니다. 너그럽고 지혜로운 어른 한 명만이라도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금의 어른은 그 윗 선배 어른한테서 배웠을 것입니다. 지금의 어른들의 이런 모습을 미래 어른이 될 젊은 청년들과 아이들이 보고 배우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제 아이에게 당부합니다. 너의 아버지를 닮지말라고. 고집불통 겁쟁이이며 협잡꾼에다가 심지어 간사하기까지 하며 비난과 겁박을 밥 먹듯 하는 저를 절대 닮지 말라고요. 어른이라고 다 현명하거나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쳐 놓은 덫에 단단히 걸려버렸습니다. 벗어나려 몸부림칠수록 그 덫은 속살을 더 파고들고 조여옵니다. 제발 덫을 놓은 사람이 덫을 벗겨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의대생과 전공의 아이들에게 부탁하고자 합니다. 거창한 국가와 사회적 책무, 의사의 희생 이런 것 말고 오직 자신과 옆 동료들을 위해 서로 용기를 내어 일상으로 돌아가 주기를 평범한 아버지가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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